"자식이 아무리 큰 죄를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부모는 자식을 품어 안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이들만 탓할 일은 아닌 것 같아요."15일 밤 서울 용산경찰서 형사계 사무실. '남자들 앞에서 잘난 척 한다'는 기막힌 이유로 또래 여학생을 집단 폭행해 숨지게 한 사건을 맡은 경찰은 사고를 일으킨 청소년 부모들의 행태에 혀를 끌끌 찼다. 피의자 중 안모(16)군의 이혼한 어머니(41)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마지 못해 '소 닭 보듯' 자식을 잠깐 대하거나 아예 면회조차 오지 않았다.
엽기적인 '여학생 집단구타 살인사건'의 이면에는 예상대로 붕괴된 가정,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무관심 등이 있었다. 안군이나 공범 황모(16)군의 아버지는 아들이 저지른 살인사건으로 세상이 온통 떠들썩했는 데도 18일까지 얼굴 한 번 비추지 않았다.
비행청소년이 붙들려 올 때마다 죄지은 자식 대신 선처를 호소하는 부모 모습에 익숙해 있는 경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 피의자 부모들의 무관심에 착잡해 했다.
이번에 숨진 홍모(16)양 역시 집에서 버림받다시피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말썽만 피우지 말고 유학을 가라"는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4개월 전 가출한 홍양은 10대 팬클럽 회원들을 찾아 전전하다 변을 당했다.
하지만 15일 딸의 참변 소식을 듣고 지방에서 올라온 홍양의 아버지(45)는 딸의 신원만 확인한 뒤 누가 볼 새라 황급히 발길을 돌렸다. 혹시나 자식의 죽음을 비통해하며 한바탕 소동을 벌이지 않을까 긴장하던 경찰은 오히려 맥풀린 표정을 지었다.
'자식 둔 골은 호랑이도 돌아본다'는 속담이 있다. 새끼를 사랑하는 정은 짐승도 마찬가지이니 사람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는 뜻일 것이다. 부모가 돌아보지 않는 곳에서는 자식이 결코 바르고 건강하게 자랄 수 없다는 평범한 진실을 이번 사건은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
최기수 사회부 기자 mount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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