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아침을 열며]재정개혁을 시작하자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아침을 열며]재정개혁을 시작하자

입력
2002.11.19 00:00
0 0

정부 부문의 개혁은 크게 행정개혁과 재정개혁으로 구분된다. 행정개혁은 정부조직을 개편하고 인사제도를 개혁하는 것이고 재정개혁은 예산제도, 조세제도 및 회계제도를 개혁하는 것이다. 정부 부문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행정개혁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이 재정개혁이다. 현재 우리의 재정제도는 우리의 경제수준에 훨씬 미달하는 후진적인 모습이다.재정개혁은 행정개혁보다 어렵다. 지난 5년간 DJ정부는 정부 부문의 개혁을 위해 정부개혁실도 만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그 대부분은 행정개혁 분야이고 재정개혁 부문에서는 상대적으로 노력과 관심이 적었고 성과도 미흡했다. 그렇다면 왜 재정개혁은 행정개혁보다 어려운 것인가.

첫째, 개혁에는 저항이 따르기 마련인데 그 강도가 재정개혁의 경우 더 강력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어떤 조직이 개편되거나 인사제도가 바뀔 때 그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재정제도가 바뀌고 자기가 주무르는 돈의 문제가 결부되면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민감해진다. 사람들이 얼마나 돈의 문제에 대해서 민감한지는 일찍이 마키아밸리가 아버지를 죽인 원수와 돈을 빼앗아간 자를 비교하면서 예리하게 지적한 바 있다. 돈의 문제가 결부되면 사람들은 사생결단으로 저항하기 마련이다.

둘째, 이와 같이 어려운 재정개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최고 결정권자들의 인식과 결심, 그리고 확고한 지원이 필요한데 그것들을 얻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인식의 문제다. 행정개혁 프로그램을 높은 분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은 비교적 쉽다. 그러나 복잡한 숫자와 제도가 관련된 재정개혁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수년 전 경제부총리, 예산실장과 셋이서 재정개혁에 대해서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대화 자체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 고역을 치른 기억이 있다. 언젠가 책에서 5년전 외환위기 직전에 청와대 경제수석이 국가파산에 이르는 위기상황에 대해 보고하는 동안 대통령이 자꾸 시계를 들여다보며 '얘기가 언제 끝나나'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글을 읽었다. 그런 상황에서 일반 경제문제가 아닌 재정개혁 과제의 경우라면 보고 자체가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재정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수지(收支)에 대한 개념이 왜곡돼 있다는 점이다. 수년 전 IMF에서 일하면서 몽골의 재정개혁을 도와준 적이 있었다. 그곳 예산실장과 개혁을 위한 힘겨운 씨름을 하면서 인간적으로 가까워졌다. 헤어질 때쯤 그가 고백 비슷한 얘기를 했다. 자기가 오랫동안 예산을 맡아 왔는데 수지라는 개념을 알게 된 것은 IMF 사람들을 만난 후부터라는 것이었다. 놀라서 물었더니 다소 기막힌 얘기를 했다. 오랫동안 구 소련의 위성국가 노릇하면서 대충 세금걷고 대충 지출해서 적자가 생기면 모스크바로 달려가는데 소련이 군말 없이 적자분을 메워주었다는 것이다. 이런 나라 살림을 오래 하다 보니 수지를 맞춘다는 개념을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이 얘기를 들으면서 한심하다는 생각과 함께 비슷한 상황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름아닌 우리였다. 우리는 자주 '수지 맞는다'는 말을 쓴다. 이 말의 원래 의미는 수입과 지출이 맞아 떨어져 이익도 손해도 생기지 않는다는 것인데 실제로는 좀 과장해서 폭리가 생긴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와 같이 잘못된 수지 개념은 특히 정부재정의 경우 심각한데 그로 인해 기본적인 개념, 즉 수입 지출 적자 부채 등의 개념이 왜곡되어 많은 허구적 수치들이 양산되고 있다.

대통령 선거가 한달 앞으로 다가섰다. 이번에는 재정개혁의 중요성과 내용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 개혁의 성공을 위해 확고한 결심과 자세를 가진 지도자가 선출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이 계 식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