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TV의 인기 프로그램 '느낌표,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를 둘러싼 출판계의 논란이 뜨겁다. 책과는 아예 담 쌓고 지내는 사람들을 서점으로 유인해 출판시장 자체를 키웠다는 긍정론과 독서 편식 및 출판시장 왜곡 등을 문제 삼는 부정론이 맞서고 있다.양쪽 주장 모두 타당한 면이 있다. MBC 제작진이 '느낌표…'의 긍정적 역할에 자부심을 갖되 부정론을 펴는 사람들의 주장을 경청하면서 다소의 변화를 시도해보는 것이 어떨까 한다. 내가 여기서 하고자 하는 말은 긍정-부정의 문제가 아니라 TV의 역할에 관한 것이다.
우선 TV가 죽어가는 독서문화를 살리기 위해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고 고민한 끝에 그런 프로그램을 내놓은 MBC 제작진의 선의와 문제의식만큼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이야 인기가 높으니까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초기에 그런 '실험'을 해 볼 생각을 했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한국 TV의 가장 큰 병폐가 무엇인가? 논자에 따라 달리 보겠지만, 나는 '사회로부터의 도피'를 지적하고 싶다.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이 '사회'는 뉴스와 시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떠 넘긴 채 '사회'와 유리된 오락성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드라마의 사랑 이야기나 연예인들의 신변 잡담 속에도 '사회'가 없는 건 아니지만, 여기서 말하는 '사회'는 우리가 시급히 다뤄야 할 중요한 현안들이다. 예컨대, 모든 국민이 척결 대상 제1호로 꼽는 부정부패 문제를 생각해보자. 드라마나 다른 오락 프로그램이 이 문제를 다루면 안 되는가? 중남미 국가들의 TV는 그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데, 우리는 중남미보다 수준이 높아서 안 되는가? 그런 고발성 프로그램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겠지만, 지금 우리나라 PD와 작가들의 역량이면 얼마든지 세련된 오락적 포장을 씌워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전혀 다른 데에 있는 것 같다. 지난 91년 상류층의 부동산 투기를 정면으로 다룬 MBC TV의 대하드라마 '땅'이 외압에 의해 조기 종영된 이후 사회성 드라마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방송사들이 사회의 치부를 정면으로 다룰 때에 발생할 수 있는 논란을 원치 않는데다 PD들도 아무런 보호 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논란에 휘말려 들기를 꺼린다는 게 주된 이유일 것이다.
이건 곤란하다. 우리 TV가 선진국 흉내를 내는 것도 좋겠지만, 외교관이 비자를 팔아먹을 정도로 썩어빠진 총체적 부패구조를 외면하면서 '사회'가 실종된 오락에만 탐닉할 수는 없는 일이다. '느낌표…'의 경우에서 보듯이 TV 오락프로그램의 위력이 가공할 만한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일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느낌표…' 제작진의 문제의식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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