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과 싸워 결코 이길 수 없다."중견 조각가 한진섭(46)씨는 대신 돌과 어우러지려고 한다. 돌을 쪼거나 갈아서 그릇으로도 쓰고 사냥도구도 만들고, 석굴에서 편안히 잠들었던 석기시대인처럼. 한씨가 20일부터 12월 2일까지 가나아트갤러리 초대로 서울 인사아트센터(02―736―1020)에서 여는 열번째 돌조각전 '휴식'은 차가운 돌덩어리에서 발견한 따스한 인간미의 향연이다.
전시 제목처럼 이번 그의 작품들은 한결 여유로워 보인다. '휴식' 연작은 먼 하늘을 바라보는 소녀 형상을 한 소박한 작품 속에 들어가 쉬거나, 턱을 괴고 앉은 소년 형상의 조각 곁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터앉아도 좋다. 대리석으로 만든 작품 '생명'은 빙글빙글 돌려봐야 더 재미있다. 한씨는 돌에서 인위적으로 인간의 형상을 쪼아내기보다는 돌의 결에서 사람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발견하고, 그것을 관객이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다듬었다. 어느 작품에서나 느껴지는 것은 작가 특유의 여유있는, 토속적이고 해학적인 조형미다. 돌조각은 중노동이지만, 그의 손 끝에서 돌은 육중함이나 견고함 같은 이미지를 주는 물체가 아니라 따뜻하고 부드러운 질료로 변해버린다. 고집스럽게 돌조각의 한길을 걸어온 작가의 성취일 것이다.
한씨는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80년대초부터 10여년간 이탈리아 카라라 국립아카데미에서 수학하고 작업했다. 세계적 조각전인 일본 하코네 야외미술관 주최 로댕 대상전에서 우수상을 받았고, 90년 카라라 국제조각 심포지엄 수상작은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한국팀 경기가 열린 베로나 경기장 상징조각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 한국구상조각회 회장이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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