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기질 때문인지 충청 지역을 둘러 본 주말과 주초 서슴지 않고 어느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몇 차례고 되물으면 3분의 2 가량은 "이회창 후보가 된다고 하긴 하던데…"라면서도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이들조차 절반 정도는 개인적으로 이 후보를 지지하는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회창 대세론이 먹혀 들고 있지만 매우 유동적인 상황임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이는 여성과 20·30대를 중심으로 "정몽준 후보가 좋다", "개혁하려면 노무현 후보가 돼야 한다"는 얘기가 단일화 합의 이후 힘을 얻기 시작한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노·정 후보 지지자들이 후보단일화에 거는 기대는 꽤 컸다.■엇갈리는 민심
대전시 공무원인 유모(50)씨는 "민주당이 집권한 뒤 제대로 된 것은 없고 혼란만 많았다"며 "국정운영 경험이 풍부하고 경륜 있는 한나라당과 이 후보가 집권하면 나라가 안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충북의 모 민주당 의원 보좌관도 "자체 여론조사를 했더니 이 후보 지지율이 50%를 넘었다"며 "후보단일화가 돼도 이 후보를 이기지는 못할 것"이라고 내다 봤다. 하지만 이 후보의 지지도가 탄탄하다고는 볼 수 없었다. 대전에서 건설업을 하는 이모(45)씨는 "현실적으로 이 후보가 유일한 대안인 것 같다"면서도 "병역비리, 호화빌라, 손녀의 미국 출산 논란 등으로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지만 현 정권이 싫어서 어쩔 수 없이 지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의 주변 문제가 대선의 잠복 쟁점임을 짐작케 한다.
노·정 후보 지지자들은 주말을 고비로 활기를 찾았다. 대전에서 자영업을 하는 황기철(37)씨는 15일에만 해도 "이회창 대세론을 뒤집긴 힘들 것 같다"며 시큰둥한 반응이었으나 단일화 합의가 나온 17일에는 "정 후보로 단일화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적극성을 보였다. 그러나 충북대 대학원에 다니는 이모(27)씨는 "TV토론을 보면서 정 후보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며 "노 후보는 너무 과격한 것 같고 정 후보는 알맹이가 없다"고 꼬집었다. 박모(21·충남대 경영학3)씨는 "노 후보가 단일후보가 되면 20대를 중심으로 노풍이 다시 불어 선거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6일 둘러 본 충남대 교정에는 5년 전과 달리 대선 관련 대자보 하나 붙어 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학생들도 선거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쇠락하는 JP
JP의 쇠락은 역설적으로 정치 기반인 이곳에서 더욱 확연했다. 대전과 청주 등 도시 지역에서는 물론 고향인 충남 부여에서조차 좋은 얘기를 듣기가 쉽지 않았다. 부여군청에 근무하는 40대 공무원은 "JP가 오락가락 행보를 해서 실망하는 사람이 많다"며 "2년 뒤 총선까지 치르겠다고 하지만 그때면 80세를 눈앞에 둔 노인 아니냐"고 반문했다. 청주 시내의 칼국수 집에서 일하는 30대 여성은 "김씨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대전에서 만난 이모(38·회사원)씨 역시 "JP란 이름만 들어도 짜증이 난다"며 극단적 반감을 드러냈다.
충청권의 자민련 의원들이 속속 이탈하는 것도 자민련과 JP가 더 이상 보호막이 될 수 없음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자민련에서 최근 탈당한 나모(55)씨는 "한때 JP는 충청도 사람들의 자존심 그 자체였지만 이제 그런 역할은 끝났다"며 "60대 이상의 세대에게는 향수가 없지 않겠지만 이제 그를 좋아하던 사람조차 은퇴를 바란다"고 말했다.
/대전=이동국기자 ea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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