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첫 우승 드라마가 연출된 한국시리즈가 끝난 후 LG의 투수 이상훈을 만났다. 대학 후배인데다가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함께 뛰었고 누구보다 이상훈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위로도 할 겸 자리를 함께 했다. 6차전에서, 그것도 9회 말에 삼성 이승엽에게 역전패의 빌미가 된 동점 3점 홈런을 내준 터라 이상훈은 허탈한 상태였다.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승리에는 불가사의한 승리가 있지만 패배에는 불가사의한 패배가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나도 개인적으로 포스트시즌에서는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1986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동점홈런을 맞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시즌 중 국내에 복귀한 이상훈은 LG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일등공신이었다. 하지만 체력이 많이 떨어져 포스트시즌에서 위태위태했던 것도 사실이다. 또 이상훈은 포스트시즌에 돌입한 후 왼쪽 팔꿈치가 아파 볼을 제대로 던질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악물고 경기에 나섰던 것이다. 이상훈이 올 한국시리즈에서 무너진 결정적인 이유다.
이상훈은 승부욕이 대단한 선수다. 일본에서 함께 생활할 때의 일이다. 한번은 경기중 강판당한 이상훈이 라커룸에서 글러브를 내동댕이치며 소란을 피운 적이 있다.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자 분을 삭이지 못해 소란을 피웠던 것이다. 다혈질로 소문난 호시노 센이치 감독은 이런 이상훈을 높이 평가했다. 패기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후에 이상훈은 팀내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자리잡으며 맹활약했다. 올해 친정팀에 복귀해서도 이상훈은 LG의 분위기를 다잡는 데 큰 몫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올 한국시리즈 6차전은 아무리 얘기해도 이상훈에게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악몽이다.경기를 하다 보면 주력선수들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연승을 거둘 때가 있다. 이와는 반대로 최상의 멤버를 구성하고도 연패하는 경우도 많다.
현역시절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실패를 교훈삼아 다음 목표를 향해 준비하는 자세를 강조한 말이다. 결점이나 실패는 눈에 잘 보이고 말하기 쉽다. 하지만 장점은 좀처럼 찾으려 하지 않고 인정하기 싫어하는 게 사람들의 심리이다. 이상훈은 장점이 많은 선수다. 팬들도 이상훈의 실패를 떠올리기보다 평소 그가 보여준 패기 넘친 플레이를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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