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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둘 다 이기는 후보단일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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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둘 다 이기는 후보단일화를

입력
2002.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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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가 16일 새벽 후보단일화 방안에 극적으로 합의했다. 국회 식당에서 심야회동을 마친 두 사람은 어깨동무를 한 채 근처 포장마차로 가서 소주로 축배를 들었다. 회담을 지켜보던 양당 인사들은 환호를 보냈고, 눈물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16일 새벽의 그림은 일단 그럴듯하게 보인다. 그러나 국민들 사이에선 박수 치거나 감동하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각자 자기가 후보가 돼야 한다는 단일화 협상인데 순조롭겠느냐, 또 무슨 추태가 벌어질지 아느냐고 머리 흔드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두 사람이 후보 단일화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왜 후보단일화가 필요한가, 왜 반(反)이회창인가를 분명하게 납득시켜야 한다.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이기기 위한 이합집산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87년 대선을 앞두고 많은 국민들이 김영삼 김대중 후보의 단일화를 촉구하던 것과는 사정이 다르다. 그 때는 삼십여년에 걸친 군사정권을 끝장내야 한다는 간절한 염원과 대의명분이 있었다. 오늘의 한나라당과 이회창 후보는 독재세력도 아니고 타도 대상도 아니다.

민주화 투쟁의 동지였던 김영삼 김대중 후보는 적전분열로 국민의 여망을 저버렸다는 비난을 들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몽준 후보는 동질성보다 이질성이 두드러져서 손잡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울 정도다. '서민 대 귀족'의 대결 구도를 내세우던 노무현 후보가 재벌가의 정몽준 후보와 얼싸안는 장면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모든 여건이 87년보다 허약하다. 후보단일화의 명분도 약하고, 단일화하라는 국민의 압력도 약하고, 두 사람의 동질성도 약하다.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는 논리도 약하다. 한가지 강점은 두 사람 모두 젊다는 것이다. 지리멸렬한 정치를 일거에 몰아내는 새 바람으로 단일화의 의미를 살려나간다면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은 후보단일화 합의문에서 '낡은 정치 타파와 정치 혁명'을 선언했다. 정치개혁, 남북관계 발전, 경제, 농업 개방 등이 국가적 당면과제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그 해결방안에 의견을 같이 한다고 밝힘으로써 단일화의 명분도 갖췄다.

그렇다면 후보단일화 과정이 그들의 개혁의지를 시험하는 첫 무대가 될 것이다. 그들은 지금 이 순간부터 낡은 정치 타파와 정치혁명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대선후보 등록일인 27일까지 겨우 열흘남짓 남아 있다. 그 안에 후보를 단일화하려면 많은 난관을 돌파해야 한다. 욕심을 버리고 공정한 룰에 복종하지 않으면 성사되기 어려운 작업이다.

두 사람은 모두 50대로 젊고 구시대의 정치악습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인물들이다. 87년에 '정치9단'들이 하지 못한 일을 그들이 해 낸다면 한국정치에서 희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이 후보단일화를 위해 공정하게 경쟁하고, 깨끗하게 승복하고, 대선에서 사심 없이 협조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 한국정치가 한단계 올라갈 것이다.

이 쉽고도 어려운 과정을 두 사람이 해 낼 수 있을까. 두 사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과연 페어플레이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 그렇게 하지 못하면 두 사람이 내세운 정치혁명은 사기극에 불과하고, 후보단일화는 상처뿐인 해프닝으로 끝날 것이다.

정치인들에게 무슨 공자 말씀을 하느냐고 핀잔 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처신을 바르게 하지 않는 정치인은 살아 남기 힘든 시대가 오고 있다. 아니 그런 시대가 이미 왔는데도 정치인들은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두 사람은 젊기 때문에 오늘이 중요한 만큼 내일도 중요하다.

두 후보는 정치생명을 걸고 페어플레이를 하기 바란다. 단일화 경쟁에서 이긴 사람과 진 사람이 손을 맞잡고 전국을 누비며 정치혁명으로 젊은 나라를 만들자고 호소한다면 그것만으로 이미 젊은 정치의 승리다. 대선에서 이기고 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정치에 페어플레이 정신을 심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패자가 되지 말고 승자가 되기 바란다.

/본사 이사 msch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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