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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샛별없는 한국 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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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샛별없는 한국 마라톤

입력
2002.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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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지닌 민족은 행복하다. 조국 땅 위에서 구김살없이 달릴 수 있는 젊은이는 행복하다. 그들이 달리는 것을 누가 막겠는가."일제 속박에 신음하던 민족의 자존심을 일으켜 세웠던 손기정(孫基禎) 옹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라 잃은 설움을 딛고 올림픽 제패의 금자탑을 쌓은 마라톤 거인의 영결식을 지켜 보면서, 그의 선구자적 업적을 추앙하는 마음과 한국 마라톤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엇갈렸다.

생전의 손 옹에게 마라톤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었다. 60여년 전 가슴에 일장기를 단 채 우승을 향해 달리던 때와 마찬가지로, 그에게 달리기는 언제나 조국을 위한 투쟁이었다. 그는 후배들에게 늘 이렇게 되뇌었다. "조국을 위해 달리자. 올림픽 정상에 우뚝 서고서도 승리의 감격보다 나라 없는 자의 눈물을 흘려야 했던 한을 풀어다오. 태극기를 세계 만방에 휘날리는 마라토너가 되어 달라."

광복 이후 그가 지도자로 활약했던 10년 기간은 한국 마라톤의 최전성기였다. 세계 최고 권위의 보스턴 마라톤을 잇따라 석권하는등 마라톤은 신생 약소국 대한민국을 세계에 널리 알리며, 헐벗은 국민에게 희망을 안긴 스포츠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그가 지도자 생활을 접은 뒤, 한국 마라톤은 암흑기에 빠져들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신화를 창조한 황영조(黃永祚)가 등장하기 전까지, 한국은 세계 마라톤계의 변방에 머물렀다.

황영조가 그 기나긴 침체를 기적처럼 깨뜨렸을 때, 온 국민의 마라톤 열기는 대단했다. 저마다 꿈나무 육성을 외치는 가운데 한국 마라톤은 그야말로 탄탄대로를 달리는 듯 했다. 그러나 이봉주(李鳳柱)를 제외하고는 마라톤의 장래를 짊어질 만한 재목은 나오지 않고 있다. 스포츠 상업주의가 판치는 가운데 체육계나 국민 모두 국제대회 우승 소식에 반짝 관심을 보일 뿐이다. 어느 육상인의 말처럼, 하늘에서 갑자기 별이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모습이다. '겨레의 마라토너'를 떠나 보내는 우리 모두가 스스로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정연석 체육부 차장 ys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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