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을 때가 많다. 어른인 아빠는 이틀 동안 20시간 일하고 28시간 쉬는데 어린이인 나는 27시간30분 공부하고 20시간30분 쉰다. 왜 어른보다 어린이가 자유시간이 적은지 이해할 수 없다. 숙제가 태산 같다. 난 그만 다니고 싶다. 물고기처럼 자유로워지고 싶다." 지난 8일 과중한 공부 부담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남긴 유서다.너무 염세적이라 어린아이가 쓴 글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이 아이는 이미 오래 전부터 '불행'이란 ID로 인터넷 채팅을 하면서 '답답한 인생' '답답한 세상' 등 세상을 비관하는 말을 자주 해왔고, 사건 전날에는 친구에게 자살을 예고하는 말을 남겼다. 이런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이번 사건은 심약한 어린이가 벌인 우발적인 사고라기보다는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생긴 만성적인 소아 우울증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어린아이가 웬 우울증?"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어린이 100명 가운데 한두 명은 소아 우울증을 앓고 있다. 이런 아이들은 갑자기 성적이 떨어지고 머리나 배가 아프다는 등의 핑계로 등교를 거부한다. 심하면 야뇨증이 생기고 때로는 지나치게 부산하고 산만해지기도 한다. 이런 소아 우울증은 성인 우울증과 마찬가지로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이다. 하루 예닐곱개 학원을 전전하다 파김치가 돼 밤늦게 귀가하는 아이들은 그만큼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
우울증은 일찍 발견할수록 쉽게 치료할 수 있다. 부모라면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해!" 라는 판에 박힌 당부대신 포옹으로 사랑을 표시하고 아이의 심리상태가 어떤지 주의깊게 살펴야 한다. 앞서 말한 아이처럼 자살자 10명 가운데 8명은 죽기 전에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죽음을 예고한다고 한다. 그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죽음이 아닌 도움일 것이다.
/정찬호 정신과전문의·마음누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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