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발표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성명이 북한에 주는 첫번째 메시지는 경고이다. 14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집행이사국의 결정으로 다음달부터 중유를 공급받지 못하게 됐다고 해서 극단적이고 모험적인 대응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북한은 핵 개발의 명분으로 미국의 위협을 들고 있다. 미국이 자신들에게 '악의 축'이라는 굴레를 씌우고, 선제공격을 할 수 있다고 위협하는 이상 핵 개발은 생존권 확보를 위한 정당한 수단이라는 게 북한의 논리이다.
이런 논리의 연장에서 미국의 중유 공급 중단 결정에 대해 북한이 취할 수 있는 대응의 하나는 1994년 제네바 핵 합의 체결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즉 핵 합의에 따라 봉인한 플루토늄 핵 연료봉을 꺼내 재처리하는 식의 강경 대응을 할 가능성이 있다. 부시가 KEDO의 결정 다음날 성명을 발표하면서까지 "북한을 침공할 의사가 없다"고 거듭 확인한 데는 북한이 핵 문제 해결의 방향타를 미국과 대결하는 쪽으로 잡을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 점에서 부시의 성명은 최근 북한이 요구하고 있는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에 대한 간접적인 답변이라고 할 수 있다. 문서는 만들지 않겠지만 미국의 최고통치권자가 북한에 대한 불침공 입장을 확인함으로써 북한의 체면을 살려주겠다는 것이다.
동시에 미국의 성명은 한국 정부의 우려와 국제사회의 비난을 무마하는 효과도 노리고 있다. 미국이 일방적이고 즉흥적으로 북한을 밀어붙여 한반도 상황을 파국으로 몰고 가는 일은 없을 것이니 미국식 해법을 믿고 따라 달라고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북한의 강경 대응으로 한반도에 핵 위기가 재발할 경우 미국이 떠안게 될 책임을 분산하는 방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성명의 행간에서 북한 핵 문제의 최종 단계는 대화일 수밖에 없다는 미국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은 이번 성명에서 지난해 6월 대북정책 검토를 끝내면서 북한과의 관계를 '대담하게' 개선하기 위해 포괄적 대화를 제의했던 일을 상기하고 있다. 북한의 약속 위반 때문에 기회를 잃었지만 향후 북한과 지금과는 완전히 '새로운 미래(different future)' 관계를 설정할 수 있다는 뜻을 북한에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 관계의 최종 지향점은 북미 수교이다. 물론 이러한 관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조속히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전면사찰을 수용, 가시적으로 핵 무기를 폐기해야 한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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