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가 다시 '북한 핵 홍역'을 앓고 있다. 경제력에 걸맞지 않게 핵 개발에 매달리는 '작은 국가'들은 강한 동기들을 갖고 있다. 북한은 무력 적화통일과 정권 안보, 한미연합 군사력 억제수단으로 핵 선택이 필요했다. 구 소련의 팽창정책 등 사회주의 강국들로부터 자주의 여지를 넓히기 위해서도 핵 건설에 치중했다. 이러한 안보요인 외에도 정치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북한은 주체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정치적 의지를 실체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군사적 상징으로 핵무기를 선택했다. 실제로 북한은 '작은 사회주의 강국' 건설을 꿈꾸면서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해 왔다.냉전체제가 붕괴되고 북한의 경제침체가 심각한 현 상황에서는 북한의 이러한 핵개발 동기들은 현실성을 크게 상실했다. 우선 미국의 요구조건(대량살상무기 해체)을 단계적으로 충족시켜 나간다면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미국과의 실질적인 안보확약을 유도해 낼 수 있다. 남한으로부터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우려는 대화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문제는 북한의 무력적화통일 추구인데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중국을 포함한 구 사회주의 동맹들도 북한의 대남 군사공격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며, 군사역량 면에서도 남한이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할 때, 대남 무력적화통일 전략은 더 이상 그들의 목표가 될 수 없다. 또한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된 지금 군사력 증강을 통해 '작은 사회주의 강국'으로 유일지배정권을 강화하겠다는 것도 이젠 꿈에 불과하다. 동시에 기존의 사회주의 강대국들이 팽창정책으로 북한을 자극하는 일도 거의 사라졌다.
이러한 안보환경의 변화로 북한의 핵을 포함한 과도한 군사력 증강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심각한 대내외적 부담으로 되돌아 올 것이다.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하고 있고, 러시아도 비슷한 입장을 견지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북한은 스스로 더 많은 적을 만들게 되어 유일지배정권의 안보마저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핵으로 군사방위를 담보하겠다는 전략은 더 큰 핵공격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 북한이 핵개발을 고집한다면 미국으로부터의 사전공격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제적 압력도 더욱 가중될 것이며, 남북한 관계 역시 군비경쟁이 심화하는 방향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북한의 선택은 자명해진다. 북한은 핵무기가 더 이상 유일지배정권의 안보를 담보해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군사적 허장성세 보다는 현실적인 주민 먹여살리기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급하다. 최근 북한 지도부가 보인 북한 경제살리기 노력은 주목할 만하다. 신의주 경제특구, 개성공단 구상 등은 획기적인 것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러시아 및 중국으로 발빠른 방문외교를 펼친 것 또한 이제까지 보기 드문 실용적 행보라 아니 할 수 없다. 일본인 납북자에 대한 그의 시인이 있었을 때, 북한의 실용적 외교는 극에 달하는 듯했다. 대내적으로 북한은 올 7월1일부로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단행했다. 이후 이러한 새로운 경제관리 개선조치가 북한 주민들의 노동의욕을 강하게 자극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해지고 있다. 이 새로운 경제조치가 뿌리를 내리게 된다면 북한이 자체의 필요 때문에 병력을 줄이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가능케 한다. 이를 두고 '김정일식 실용주의'라 명명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낙관적 판단은 결국 새로 불거진 핵문제 때문에 크게 퇴색하는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김정일식 실용주의'가 그의 '통 큰 정치'의 일환에서 나왔다면, 그는 또 한번의 통 큰 정치를 요구 받고 있다. 핵사찰 수용과 핵포기 선언으로 대미관계를 비롯한 대외관계를 개선하고, 보다 적극적이고 실용적인 남북대화와 교류·협력을 위한 결단을 내리는 일이다.
정 영 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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