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15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대북 중유공급 중단 및 경수로 사업 재검토 결정을 계기로 한반도 정세가 미국 주도로 재편됐다고 지적하면서, 특히 북한이 핵 포기 등 상응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1994년과 같은 위기 국면이 재연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서동만(徐東晩) 상지대 교수
KEDO의 결정은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 결정이 제네바 합의를 파기했다고 간주하고 그 다음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 결정 자체는 제네바합의 파기와 동일시할 수 없으며 주변 정세가 1993∼94년과는 다르기 때문에, 북한이 '벼랑 끝 전술'을 쓰지는 않을 수 있다고 본다. 과거 북한은 사실상 고립 상태였지만 지금은 미국을 제외하고 남한 일본 중국 러시아 등과 외교 채널을 유지하고 있다.
또 북한의 내부 경제사정은 경제개혁조치 등으로 인해 더 절박해졌다. 이럴 때일수록 한국과 일본이 북한의 체면을 살려주는 중재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 백학순(白鶴淳) 세종연구소 남북관계연구실장
KEDO의 결정은 3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우선 미국이 북한 핵 개발의 실체가 불명확한 상황에서 남한과 일본의 의견을 제압하면서 먼저 제네바 합의 파기를 시도한 것이다. 미국은 또 대화를 끝내기 위해 이라크 때와 같은 선전포고, 최후통첩 방식을 구사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미국의 이 같은 접근방식은 민족과 외세의 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다. 미국은 겉으로는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고 하면서 협상 없이 압력만 행사하고 있다. 북한이 사실상 백기를 들고 나오라는 미국의 요구에 호응할 가능성은 아주 낮다. 다만 기술적으로 보면 이번 결정은 명백한 제네바 합의 파기는 아니다. 또 11월분 중유는 보내기로 했기 때문에 1개월의 시간적 여유가 있다.
■ 정욱식(鄭旭植) 평화네트워크 대표
KEDO의 조치는 기존 제네바합의의 틀을 깨뜨릴 수 있다. 문제는 북한 핵 문제를 다룰 다른 틀이 없는 상황에서 이런 결정이 나왔다는 것이다. 북한으로선 이런 상황에서 유화적인 조치를 취하더라도 부시 행정부가 만족하지 않을 수 있고 '한번 밀리기 시작하면 한없이 밀릴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더욱이 이라크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미국 대외정책의 최우선 순위가 북한이 될 것으로 믿고 있는 듯하다. 그 시간이 6개월 남짓이라고 볼 때 북한은 더욱 전쟁 억지력, 즉 핵이나 미사일 개발에 연연할 수 있다. 이번 조치로 동북아 역학구도에서도 미국의 일방적 독주가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정리=이동준기자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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