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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 선생님 고이 잠드소서 / 김운용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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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 선생님 고이 잠드소서 / 김운용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입력
2002.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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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8월. 일제 강점에 신음하던 우리 민족에게 가슴 벅찬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 분이 있었습니다. 이역만리 베를린에서 날아 온 승전보는 민족의 한과 울분을 씻어주고 우리의 혼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렸습니다.제11회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의 영웅 손기정 선생은 가슴엔 비록 일장기를 달았지만 분명 한국인이었습니다. 세계 최고기록을 수립하며 당당히 결승 테이프를 끊은 선생의 쾌거는 끊임없는 외세의 억압 속에서도 5,000년 민족의 역사를 이어온 한민족의 기개와 강인한 민족혼의 발로였습니다.

스물 네살의 청년 손기정 선수가 이룩했던 감격이 66년이 지난 지금에도 회자되고 기억되는 까닭은 역경과 좌절을 극복하고 이루어낸 꿈이기 때문입니다.

선생은 달렸을 것입니다. 일본인이 아닌 조선인으로. 민족의 뜨거운 피와 솟구치는 조국 광복에 대한 열망으로 42.195㎞의 멀고도 험한 길을….

선생이 우승한 베를린올림픽은 파시즘의 지배 하에 열린 대회여서 그 의미가 더욱 빛납니다.

일본 제국주의와 나치 제국주의를 정복하고 단상에 올라 승리자로 의연하게 섰던 그 웅자. 태극기가 아닌 일장기가 올라가고 애국가가 아닌 기미가요가 울려 퍼졌지만 그 때 이미 우리 민족은 식민 치하에 신음하던 나약한 민족이 아니고 세계를 호령하는 강인한 민족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손기정 선생은 승리의 기쁨을 뒤로 한 채 단상에서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민족의 한이 서린 눈물을 월계관 속에 감추고 가슴에 달린 일장기를 손에 든 월계수로 가린 채 말입니다. 금메달을 목에 거는 생애 최고의 순간에도 선생은 조국을 잃은 서글픔에 목이 메었습니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인간의 육체란 의지와 정신에 따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한다"라고 하신 선생의 말씀은 그 후 반세기를 훌쩍 넘은 지금까지 후배들의 영원한 교훈으로 남아 있습니다.

선생의 쾌거는 식민지 시대의 우울한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민족의 강인한 혼과 기개를 새삼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리고 해방 후 조국의 젊은이들에게는 올림픽 챔피언의 꿈을 영글게 하는 원천이 되었습니다. 66년 전의 역사적인 마라톤 우승의 영광은 해방 후 한국체육이 세계로 향하게 하는 정신적인 지주였고 이제는 올림픽에서 세계 10위권의 성적을 올리는 스포츠 강국의 위치를 차지하게 하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선생은 90 평생을 한국체육의 선구자이자 지도자로 뛰어오셨습니다. 한국마라톤에 대한 선생의 바람은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황영조 선수에 의해 무려 56년 만에 달성되었습니다. 그 때 선생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한없이 눈물을 쏟으셨습니다.

10년 후 오늘 우리는 뜻밖의 부음을 듣고 눈물을 쏟고 있습니다. 어른께서 늘 우리 곁을 지켜 주셨는데 갑작스런 와병과 부음에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을 느낍니다. 비록 우리 곁을 떠나셨지만 이제 하늘에서 우리 체육계를 지켜 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선생의 그 큰 걸음을 감히 어느 누가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선생의 삶을 영원히 귀감으로 삼아 민족에 대한 사랑, 스포츠에 대한 열정을 우리 마음 깊이 새겨 넣을 것입니다.

손기정 선생의 육신은 이제 하늘의 부름에 따랐지만 선생의 정신은 우리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숨쉴 것입니다.

손기정 선생님. 고이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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