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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풀뿌리 체육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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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풀뿌리 체육으로 돌아가자

입력
2002.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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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번째 전국체전이 막을 내렸다. 일제시대 식민지 백성의 한을 달래고, 떠들썩한 민족 축제적 성격을 지니고 출발했던 전국체전이 언제부터인지 그들만의 잔치가 되어 버렸다. 이번 제주에서 개최된 대회 역시 예전처럼 썰렁하긴 마찬가지였다. 일주일 내내 텅 빈 관람석은 올림픽 경기력 10위권, 아시안게임 2위국의 명성을 무색케 하였다.전국체전은 엘리트 운동선수들만의 잔치, 특히 최고 기록과 금메달리스트만을 위한 엘리트 제일주의로 전락하였다. 우리의 스포츠문화가 지나치게 '보는 체육' 위주로 편향된 결과가 초래한 역기능이다. 승부보다는 진정한 스포츠 정신을 발휘한 패자에게 찬사를 보내는 여유가 아쉽다.

스포츠는 사회의 거울이다. 상업주의, 능력주의, 가부장주의 등 한국 사회의 자본주의적 가치는 스포츠를 통해 여실히 반영된다. 경쟁과 승부보다는 더불어 사는 정신이 중시되는 사회일수록 스포츠의 참여정신과 스포츠맨십이 강조되는 반면, 우리처럼 치열한 경쟁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스포츠 고유의 정신은 퇴색되고 오로지 승리 지상주의 이데올로기만이 지배한다. 승리 지상주의는 우리사회의 엘리트주의와도 무관치 않다. 1등의 탁월함만 돋보일 뿐, 패자의 노력이나 아픔은 결코 존중되지 않는다.

또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사회풍토는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바, 전국체전 때면 판정 시비, 부정선수 시비가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대회에서 어느 결승 경기의 경우 일방적 경기를 펼친 선수가 패하고, 우승 판정이 내려진 선수조차 겸연쩍어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한 것은 단적인 예이다. 또 선수들의 주민등록 위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진정한 스포츠 정신은 온데 간데 없다. 승리 지상주의가 낳은 필연적 산물이다.

승리 지상주의가 지배하는 스포츠 문화에서 선수는 메달을 위한 수단이고, 운동기계에 불과하다. 우리와 선진국 스포츠 문화의 가장 큰 차이는 선진국의 경우 자신이 좋아서 운동을 열심히 하다 보니 우수한 엘리트 선수가 되는 반면, 우리는 어려서부터 죽어라 운동만 한다는 점이다. 애틀랜타 올림픽 철인경기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던 독일의 프랑크 부제만이 도르트문트 근교 한 작은 마을의 은행원이었던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운동이 상급학교의 진학 수단이 되어 버린 우리의 스포츠 현실에서 학부모, 교사, 지도자는 승부에 집착할 수 밖에 없고 이런 환경에서 즐겁게 운동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학생 선수들은 어려서부터 승리 지상주의 이데올로기만을 추구하고, 스포츠 참여를 통한 협동, 자기만족, 공동체 정신 배양은 교과서에 나오는 미사여구에 불과하다.

스포츠 문화는 아마추어리즘을 회복해야 한다. 기분 전환을 위한 스포츠 참여는 공동체적인 기쁨과 환희를 갖게 하는 놀이적 성격이 본래적 의미이다. 스포츠에서 아마추어리즘과 엘리트주의는 상반된 관계가 아닌 상호보완적 내지 연계적 관계이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쿠베르탱이 100년전 '100명의 아마추어선수로부터 1명의 엘리트선수가 배출된다'고 한 것은 지금도 변함없는 진리다.

아마추어리즘에 입각한 든든한 풀뿌리 체육의 기반 없이, 엘리트 체육만이 비대하게 발전한 결과 전국체전이 그들만의 축제로 전락한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주 5일제 근무시대를 앞두고 우리도 승리 지상주의가 아닌 함께 참여하고 즐기는 공동체적 체험에 가치 우위를 두는 선진국형 스포츠문화의 정립을 기대한다.

안 민 석 중앙대 스포츠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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