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마스 이디노풀로스 지음 그린비·1만8,900원예루살렘, 기원전부터 지금까지 30세기 동안 신의 이름으로 포위되고 방어되고 정복당하고 파괴되었다 재건되는 일이 40차례나 되풀이된 도시. 이 도시는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세 종교가 모두 자기 종교의 성지로 떠받들며 신성하게 여기는 곳이다.
미국 오하이오주에 있는 마이애미 대학교의 종교학 교수인 토마스 이디노풀로스가 1991년 저술한 '예루살렘'은 세 종교의 투쟁을 통해서 본 예루살렘 통사다. 세 종교가 각각 예루살렘과 인연을 맺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20세기 초반까지의 예루살렘 역사를 3부로 나누어 다루고 있으며, 마지막 4부에서는 영국이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를 시작한 1917년부터 제3차 중동전쟁인 1967년까지를 다루고 있다. 원서에 없는 보론 부분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과 미국의 친이스라엘 정책을 중심으로 1967년 이후 현재까지 상황을 한국외대 아랍어과 홍순남교수가 첨가했다. 부록인 중동지역 약사와 연표 등도 충실하다.
제1부에서는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정신적인 수도로 여기게 된 역사적 근거를 설명한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것처럼 기원전 1,000년께 다윗왕의 통합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가 예루살렘으로 정해지면서 신의 도시의 역사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다윗의 치세는 전체 예루살렘 역사에서 극히 짧은 기간이었지만 메시아 구원의 신화를 지닌 예루살렘의 정체성을 확립한 중요한 시기였다. 이후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은 고난의 상징이었다. 다윗의 왕국은 두 세대만에 둘로 분열되고 잇따라 바빌로니아, 헬레니즘 왕조,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예수가 등장하면서 예루살렘은 그리스도교의 성지로 변모한다. 이 과정에서 예수를 인정하지 않는 토착 유대인들과 그리스도교인과의 갈등이 이어진다. 그러나 이 대립은 짧았다. 638년 이슬람 제국의 칼리프 우마르가 예루살렘을 정복했다. 예루살렘은 이슬람교의 창시자 마호메트가 알라의 계시를 받기 위해 하늘로 떠난 곳이었기 때문이다. 분쟁의 운명을 타고난 것인지 공교롭게도 그 곳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곳이었다.
이슬람 세력의 예루살렘 점령으로 예루살렘을 둘러싼 현대의 분쟁구도는 완성된다. 중세의 십자군 전쟁이나 현재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대립은 자신들이 믿는 성지를 장악하기 위한 각 세력의 헤게모니 쟁탈전이라는 동일한 특성을 가진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에서 공존은 불가능한 것일까? 구약시대의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처럼 메시아가 등장할 때까지 고통받는 숙명을 지닌 도시일까?
20세기 초 영국이 개입하기 전까지 이슬람 통치 아래서 예루살렘은 쇠퇴했지만 각 민족들이 평화롭게 공존했다. 그렇다면 지금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양보한다면 예루살렘에도 평화가 돌아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적어도 당분간은 희박해보인다.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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