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통은 너무 많이 아프다. 더 이상 자라지 않아도 좋으니 제발 이 고통만 멈춰 달라고 누구에게든 빌고 싶다. 통증이 두번째로 찾아온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아픔은 여전하지만, 몸은 한 번 경험한 것을 기억한다. 견디는 것은 덜 힘들어진다. 아이는 그렇게 자라난다.김연수(32)씨가 두번째 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문학동네 발행)를 출간했다. 그는 2001년 동서문학상을 수상한 장편소설 ' 빠이 이상'으로 '인문학적 상상력의 전범' '지적(知的) 소설의 빗장을 연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런 김씨가 펴낸 새 소설집은 젊은 작가들에게 기대되는 '새로운 것'과는 언뜻 거리를 둔 것처럼 보인다. 그는 1980년대 초반 고향인 경북 김천을 배경으로 삼은 소설을 썼다. '내가…'에 실린 단편 9편이 모두 그렇다.
많은 소설가들이 자신의 삶의 체험을 작품화하는 것부터 시작할 때 김씨는 어떻게 출발해야 할지 고민했다. 대학 3학년 때인 1994년 소설가로 등단한 그는 3년여 제대로 소설을 쓰지 못했다. 90년대를 사는 김씨가 당연히 써야 할 90년대는 '가짜' 같았다. 아프게 앓았다. 첫 소설집을 내고도 막막했다.
진짜는 80년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군더더기 없는 견고한 서사의 시대. 자신이 선 자리에서 돌아서 보기로 했다. 그 시대가 그러했던 것처럼 살로 치장하지 않고 뼈대만으로 글을 쓰고 싶었다. 유년부터 스무 살까지의 체험을 정직하게 옮기기로 했다. 그는 1980년대에 경북 김천 뉴욕제과점의 막내아들이었다. 계란과 박력분이 범벅이 된 '기레빠시'(카스텔라)에 질려버린 꼬마의 기억이 어린 소설 '뉴욕제과점'에서, 학교라는 제도의 폭력이 그늘진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에서, 살육의 밤에 애나 만들고 있었다는 남자의 자괴감이 지워지지 않는 '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에서 그는 자신이 보고 듣고 겪은 것을 썼다. 그러자 80년대가 스스로 몸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 푼이라도 아쉽다"며 빵을 먹지 못하게 하는 어머니 때문에 몰래 빵을 집어서 도망친 꼬마였으며, 경찰서의 학원폭력 특별대책반에 신고된 고아와 같이 학교를 다닌 불량 중학생이었으며, 반역의 땅으로 몰린 광주에 대한 마음의 빚을 내려놓지 못하는 경상도 청년이었다.
김씨는 "한참 달려간 도로를 유턴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왜 뒤로? 라는 의문에 "내가 잘못된 길을 간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모범생 같은 글을 쓰는 게 아니냐"는 지적에 "그게 지금의 내 몸에 맞는 소설"이라고 답한다. 그의 말이 맞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에둘러 걸어온 길을 두고 그냥 젖혀두자는, 건너뛰자는 속삭임이 들린다. 그런데 이 젊은 작가는 되돌아가 성장통을 짊어진다. 좀 더 오래 걸릴지라도 똑바로 바라봐야 하는 시절과 맞서서 고통을 겪으며 자라나기로 한다. 적어도 한 번은 치렀던 아픔이어서 확실히 다음은 견딜만하다고, 이렇게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를 되짚어야만 다음 작품을 쓸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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