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집행이사국들이 14일 합의 형식으로 북한에 대한 11월분 중유공급을 중단하지 않기로 결정함으로써 대북 중유 지원을 둘러싼 한·미·일 3국 간 갈등은 일단 봉합됐다. 하지만 이 결정은 3국이 모두 만족하는 결과라기보다는 서로의 불만을 최소한의 선에서 억제하는 미봉적인 성격이어서 앞으로의 사태 전개에 따라 3국 간 불협화음은 다시 더 크게 불거질 소지가 있다.사실 이날의 결론은 미국이 마지못해 선택한 결정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KEDO 이사회를 하루 앞둔 13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를 열어 북한에 강력한 경고를 보내기 위해서는 당장 11월분 중유를 싣고 북한으로 향하는 수송선을 되돌려야 한다는 참모들의 강경 목소리를 일단 막았다.
그러나 이 결정이 대북 강경 태도의 완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미국이 11월 중유 지원 결정을 내린 데 있어 가장 고려한 요소는 북한쪽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쪽에 있다는 분석이다. 임기가 얼마남지 않은 김대중(金大中) 정부의 햇볕정책과 북일 수교 협상을 끌고 가려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에 대한 배려의 성격이 짙어 보인다.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는 "미 정부 내의 대 북한 강경 기류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강해지고 있다"며 "이미 한국과 일본이 그 대세를 되돌려 놓기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이번 결정을 통해 미국이 던진 메시지는 11월분을 준다는 것이 아니라 12월분부터 공급을 중단한다는 경고이다. 북한이 즉각적이고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핵 개발을 포기하겠다고 백기를 들고 나오지 않는 한 12월 이후의 중유는 줄 수 없다는 게 미국의 뜻이라는 얘기다. 미국은 이미 KEDO에 12월분과 2003년 1월분 중유제공을 위한 1,900만달러를 제공할 수 없다는 뜻을 전하면서 "일본이 지원을 원하면 그 돈을 대납하라"는 식의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이같은 강경책은 북미 관계의 악화에도 불구하고 1994년 제네바 핵 합의의 기본틀을 유지하려는 한국과 일본, 특히 한국 정부의 보폭을 더욱 좁게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미국이 한·일 정부의 11월 중유공급 요청을 수용한 점을 내세워 경수로 건설 지원의 중단 등 대북 압박의 수위를 높일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북한 핵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한·미간의 공조는 사실상 이번 정부에서는 끝났다는 주장과도 맥이 닿고 있다.
/뉴욕=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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