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만원입니다. 잘 쓰시고 회계 처리 정확히 해주세요." "회계처리요? 그럴 거면 은행계좌로 넣어 주지 뭐 하러 불러서 직접 줍니까." "위원장이 직접 집행해야 체면도 서고, 돈 쓴 효과도 더 있는 것 아닙니까." "…"지난달 말 한나라당 충청권 지구당 위원장 회의에서 고위 당직자와 한 위원장 사이에 있었던 대화이다. 위원장들은 당에서 처음 나온 대선 지원금이 고작 300만원이라는 데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것도 사용처를 반드시 밝히라는 지시에 일부는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까지 했다.
대선이 35일 앞으로 다가온 14일까지 한나라당이 전국 227개 지구당에 내려 보낸 돈은 300만원씩이 전부다. 여야를 막론하고 적게는 1,000만원, 많게는 억대의 지구당별 활동 자금을 지원했던 1992년 14대, 97년 15대 대통령 선거 때와는 딴판이다. 큰 선거가 있는 해에 중앙당 사무처 요원들에게 지급되던 별도 활동비도 감감 무소식이다.
얄팍한 지원금 봉투와는 대조적으로 해당 지역의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 지지율을 올리라는 지도부의 압력은 무겁다.
한나라당은 권역별 지구당 위원장 회의에서 지역구별 여론조사 지지도 통계를 나눠 주었다.
이 후보의 지지도가 높은 순서대로 지역구 순위까지 매겨진 것이었다. 따라서 하위에 처진 위원장들은 지도부의 질책이 없더라도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은 추가 자금지원도 당분간 하지 않을 눈치다. 이번 주 들어 두 번째 권역별 회의를 소집할 방침이었으나 위원장들의 불만을 감안한 듯 일부 지역구의 순위가 바뀐 2차 여론조사 결과를 시도지부를 통해 전달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실탄은 주지 않고 거듭 짐만 지운 셈이다.
그런데도 이를 공개적으로 문제 삼는 위원장은 아직 없다. 이 정도면 턱없이 부족한 당의 지원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올 법하지만 이상하게도 조용하다. 충청권의 한 위원장은 "이 후보의 당선가능성이 높아서가 아니겠느냐"고 풀이했다. 다 같은 조건인데 자기만 튀었다가 집권 후 불이익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숨 죽이고 있다는 얘기다.
한 당직자는 "당 자금이 한정된 만큼 판세가 유리하게 흘러가는 지금은 돈을 풀 때가 아니라는 판단"이라며 "그럼에도 대선 후를 내다보고 자기 주머니를 털어 선거운동을 하는 위원장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유성식기자 ss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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