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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일기 /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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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일기 /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

입력
2002.1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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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친정 아버지가 80세를 일기로 돌아가셨을 때 엄마의 외로움은상당히 커 보였었다. 50년 가까이 함께 했던 배우자를 잃은 슬픔을 누가짐작할 수 있을까.하지만 6개월이 지난 요즘 엄마는 작지 않은 상실감 속에서도 자유로움을만끽하고 있는 것 같다. 예전같으면 4시만 넘어도 ‘아유, 아버지 저녁 준비 해야 해’하며 허둥지둥 돌아갔지만 요즘엔 아무에게도 묶이지 않았다는 듯 느긋하게 딸과의 수다를 즐긴다.

노년에 남편을 먼저 보낸 친구 엄마 한 분은 딸에게 남편의 부재를 놓고“얘, 내가 늙마에 이게 무슨 복인지 모르겠구나”라고 고백했다 해서 우리 모두를 놀라게 한 적도 있다.

며칠전 소개된 작은 뉴스 한토막은 유행가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가 처절한 진실임을 보여준다. 일본 에히메 대학 의학부 연구팀이 마쓰야마시 부근 한 농촌마을의 60∼84세 노인 3136명을 4년반 동안 추적조사한결과, 남편이 있는 여자 노인은 없는 경우보다 사망률이 55%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남자의 경우엔 정반대여서 부인이 없는 남자 노인의 사망률은 있는 경우보다 80%나 더 높았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여자는 늙어서도 남편 수발 드느라 제 명에 못 죽고,남자는 부인 수발이 없으면 오래 못 산다는 얘기였다. 처음엔 좀 고소했다. 일본 남자들이 얼마나 가부장적으로 아내 위에 군림해 왔는지 만천하에폭로하는 연구인 것도 같고, 우리나라 남자들도 그런 면에서는 일본 남자들 찜쪄 먹는 수준이니까.

하지만 곰곰 씹어볼수록 참 슬프고 가슴아픈 이야기였다. 서로 눈이 멀정도로 사랑에 빠져 자식들 낳아 키우며 30∼40년 넘게 아웅다웅 살아온사람들이 결국엔 서로가 생명을 갉아먹고 먹히는 사이로 해석된다는 건…

이를 보도했다는 일본 마이니찌 신문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원문 제목은 좀 더 노골적이어서 “남편은 여자 노인들의 장수에 가장 큰 장애물”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한국 신문들에는 없는 중요한 한마디가 덧붙여 있었다.

“노년의 부부가 서로 의지하고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하나 한쪽이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는 얘기였다.

평생 가족 먹여 살리느라 동분서주해 오다 퇴직후에는 ‘낙엽족’이라 불리우며, ‘황혼이혼’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일본과 한국의 남편들은 어쩌면 아내들보다 더 불쌍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우리 남편들도 제 손으론 한끼도 해결 못하고, 눈앞의 재떨이도 부엌에 있는 아내를 불러 처리하는 불치병은 고쳐야 하지 않을까. 늙마에 사랑하는 아내로부터 ‘내가 저 인간 때문에 오래 못 살지’라는 소리 듣지 않으려면.

이덕규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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