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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647)롬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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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647)롬멜

입력
2002.1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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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11월15일, 뒷날 영국군으로부터 '사막의 여우(the Desert Fox)'로 불리게 될 독일 군인 에르빈 오이겐 롬멜이 태어났다. 1944년 몰(歿). 롬멜은 20세기의 두 차례 세계대전에 차례로 참전했다. 제1차 세계대전때 그는 소위였고, 제2차 세계대전때 그는 기갑사단장이었다.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나치스 운동에 가담해 히틀러의 친위대장이 된 롬멜은 1939년 독일군을 지휘해 빈·프라하·바르샤바를 차례로 침공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의 포문을 열었다. 롬멜이라는 이름이 연합군측에 공포의 대상이 된 것은 북부 아프리카 전선에서다. 1941년부터 두 해 동안, 그가 이끄는 독일 기갑부대는 리비아와 이집트를 비롯한 북부 아프리카를 누비며 영국군과 미군을 격파했다. 롬멜이 '사막의 여우'라는 별명을 얻은 것도 사하라 사막에서의 이 전공(戰功)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결국 버나드 몽고메리 장군이 이끈 영국군과 조지 스미스 패튼 장군이 이끈 미군에 차례로 패하고 북아프리카에서 철수해 그 뒤 서부 전선의 지휘를 맡았다. 롬멜의 최후는 비극적이었다. 1944년 부상을 입고 베를린의 한 병원에서 요양 중이던 롬멜은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에 연루돼 총통의 명령으로 자살했다.

일단 전쟁이나 전투가 터졌을 때 유일한 선(善)은 이기는 데 있다는 것이 공리주의자들의 견해이겠지만, 때로 역사는 패배한 영웅을 더 기억하기도 한다. 롬멜의 경우도 그렇다. 전승국 영국과 미국에 속해 있었던 몽고메리와 패튼은 자국 국민들의 자부심 속에 기억되고 있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제2차 세계대전기의 북아프리카를 되돌아볼 때 롬멜을 먼저 떠올린다. 워털루 전투에서의 나폴레옹이나 미국 남북 전쟁기의 로버트 에드워드 리 장군도 승리자보다 더 기억되는 패배자다.

고 종 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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