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 시드니올림픽 당시의 일이다. 한국은 칠레와의 축구 예선 마지막 경기서 1―0으로 이기고 2승1패를 기록했지만 골득실차로 8강 진출이 좌절됐다. 이 경기서 한국은 골을 많이 넣어야 했다. 그러나 이천수(21·울산)가 전반 11분 퇴장당하는 바람에 공격의 맥이 빠졌다. 이천수는 머리를 감싸 쥔 채 모든 게 자기 책임인 양 괴로워했다. 나는 "좋은 경험했다. 매사 신중하고 냉정하게 처신하라"고 타이른 뒤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2년 뒤 이천수는 또 사고를 쳤다. 한일월드컵 뒷얘기를 담은 책에서 동료 선후배를 짠돌이, 바람둥이 등으로 묘사해 한동안 팬들의 외면을 받았다. 이천수가 볼을 잡을 때면 '패스해'라는 야유가 쏟아졌다. 혼자 잘난 척 하지 말라는 질책이었다. 나는 다시 "축구에 대해서는 뭐든지 얘기해라. 그러나 사람은 섣불리 평가하지 말라"는 충고를 해줬다.
이천수는 재능이 뛰어나다. 체구는 작지만 스피드와 테크닉, 센스를 겸비했다. 욕심도 대단하다. 시키는 것만 하는 게 아니라 뭔가 응용해내려는 의욕이 넘친다. 유럽의 거구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다. 튀는 행동도 자신감에서 나온다. 좋게 보면 도전정신으로 뭉쳐진 선수다. 일부에서 끼는 있지만 싹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이 같은 자신감이 가끔 도를 넘기 때문이다. 거침없는 태도는 실수를 낳게 마련이다.
선수는 그라운드에서 모든 걸 보여줘야 한다. 그런 점에서 13일 K리그 전북전에서 보여준 이천수의 활약은 월드컵 스타로서 손색이 없다. 선제골과 쐐기골을 몰아치며 K리그 우승의 향배를 마지막 경기까지 몰고 가는 등 흥행에도 크게 기여했다. 선수의 성격은 다양하다. 묵묵히 맡은 일에 충실한 스타일이 있는 반면 이천수처럼 속내를 솔직히 쏟아내는 경우도 있다. 진정한 자신감은 실력에서 나오고 실력을 쌓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언행을 책임지는 성숙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전 축구대표팀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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