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은 시대정신과 맞지 않다, 그 말은 교과서에서 삭제해야 한다"는 인권위원회(www.humanrights.go.kr/)의 엊그제 해석은 신선하다.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앞두고 탈출을 권하는 친구에게 했다는 이 말이 교과서에 실림으로써 그간 우리의 법 정신을 지배해, 상식으로 판별하면 옳은 일조차 법에 따르면 그른 일로 치부하도록 했음을 상기하면 특히 그렇다.예컨대 2000년 총선에서 시민연대가 공천반대인사 명단을 발표하여 낙선운동을 벌인 일이 그렇다. 많은 국민이 운동에 호응했었다. 시민사회가 벌인 희망 가득한 정치개혁 운동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당시 호응한 국민은 선거법위반에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2세기 전 미국에서 살았던 소로우를 인용해가며 악법에는 복종할 필요없다는 시민불복종을 들먹였지만 그랬다. 인권위의 이번 해석에 딸린, "근대법의 역사란 '악법은 법이 아니다'라는 말을 증명해온 과정이며 악법에 대한 저항이 시대정신"이라는 명쾌한 설명이 당시 퍼졌다면 사정은 달랐을 것이다.
인권위의 이번 해석은 '법(法)대로'라는 구호가 언제나 옳을 수 없음도 시사한다. 또, '법대로'라는 구호를 들으면 불안함 먼저 느끼던 소시민이 왜 그렇게 느끼는가도 시사한다. 그 구호는 악법도 포함한 모든 법이 세상살이, 상식 위에 있음을 말하는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한나라당 이회창후보는 잘 알려진 대로 '법대로'를 늘 주장한다. MBC방송과의 100분 토론, KBS방송과의 심야토론에서도 "법과 원칙을 지키는 입장"이라는 문구를 여전히 선호했다.
그 후보에 걸맞게, 어제 오늘 한나라당은 후보단일화를 모색하는 민주당 노무현후보와 국민통합21 정몽준후보간에 있게 될 TV토론이 선거법에 맞는가, 문제삼고 있다. '법대로'를 적용하고 싶어 한다. 현재 중앙선관위(http://home.nec.go.kr) 답변은 취재 보도라면 위법이 아니라는 것.
'법대로'를 선호하더라도 이후보와 한나라당이 다른 후보 간에 있을지 모르는 TV토론에 대해 적법성부터 따지는 것은 이상하다. 그것은 선관위, 방송위가 따질 일이다. 법을 걸며 시비하는 일은 두 정당, 두 후보 간의 단일화는 야합이고, 한나라당의 철새 의원 수용은 화해의 정치라는 주장보다도 더 야릇하다. 이후보는 5년 전처럼 '법대로'라는 키를 반복하여 누를 뿐, 1명이 출연하는 김빠진 TV토론으로 선거를 혐오하는 국민이 늘어난다는 것에 통 관심이 없어 보이니 말이다.
/박금자 편집위원 park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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