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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 은희경씨 / "나약한 진짜 "나"를 소설로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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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 은희경씨 / "나약한 진짜 "나"를 소설로 증명"

입력
2002.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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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은희경(43)씨는 한국에 생각보다 빨리 가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내년 1월쯤 한국에 다녀갈 참이었다.은씨가 미국 시애틀로 간지 넉 달째다. 워싱턴대 객원연구원으로 1년 동안 미국에 머물게 된 그는 남편, 두 아이와 함께 7월 한국을 떠났다. "솥단지 거는 일부터 새로 시작해야 하는" 이국 땅에서의 가정 만들기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웬만큼 숨을 돌린 뒤 도서관에 나가 책을 읽고 공부를 시작할 즈음 그는 무엇보다 기쁜 소식을 듣게 됐다.

수상작으로 선정된 중편소설 '누가 꽃피는 봄날 리기다소나무 숲에 덫을 놓았을까'는 권위주의적인 한국사회의 한 징후로 작동하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절묘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은희경씨가 원고지 1,200매 분량의 이 작품을 계간 '문학동네' 2002년 여름호에 발표했을 때 집중적인 관심이 모아졌다. 연기(演技)와 방어로 포장된 '소라'라는 여자아이의 성장사를 읽은 독자들은 무릎을 치면서 공감의 탄성을 질렀다.

'누가 꽃피는 …'은 작가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쓴 소설이다. 그는 이 작품을 "따돌림 당하는 여자의 이야기"라고 요약한다. 짧지만 명쾌한 설명이다. 사실 따돌림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오래된 것이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읽은 한 구절을 잊을 수 없었다. '군대의 가장 큰 비극은 섞인다는 것이다.' 그 자신 "줄곧 부모와 선생님이 가리켜 보이는 곳만 쳐다보고 자란 얌전한 소녀"라고 묘사했던 것처럼, 좀처럼 남과 섞이지 못하던 사춘기를 보냈다. "모범적인 인간처럼 보이지만 스스로가 선택한 삶이 아니라면, 그것은 벗어날 수 없는 상처가 된다"는 것을 은씨는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알게 됐다. 올 여름 내내 경기 일산의 작업실에서 이 소설을 썼다. 어느날 문득 작업실 뒤쪽 리기다소나무 숲을 바라봤다. 우산살처럼 구부러진 리기다소나무는 외부의 힘으로 변형된 채 안간힘을 쓰면서 자라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양은 환하게 꽃피는 봄날 같아야 할 주인공 소라의 어린 시절과 닮아 있었다. 소라의 봄날에 덫을 놓은 것은 가정과 학교로 대표되는 제도의 잘못된 규범이었다.

막상 문예지 발표를 앞두고 은씨는 불안했다. '같은 것을 쓸 바에야 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그는 과연 이 소설에 새로운 것이 담겨 있는지 자신이 없었다. 작품이 나온 뒤 독자들에게서 "내 얘기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작가가 건드린 것은 1970, 80년대 권위주의적 교육을 받고 자라난 사람들이 마음 속에서 좀처럼 쫓아내지 못하는 '착한 아이'였다.

삶에 대한 가차없는 태도와 섬뜩하게 냉소적인 시선으로 대표적인 '90년대 작가'로 자리매김한 은씨다. 자신의 감정을 소설과 철저하게 떼어놓기로 원칙을 삼았던 그의 글쓰기는 그러나 새로운 세기로 접어들면서 달라졌다. '소라'의 모습에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 스며 있다. 작가 스스로 "나의 문학인생의 한 매듭이 지어지고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숨겨진 내면, 나약한 진짜 '나'를 소설로 증명할 때 만족감을 느낀다. 모순된 '나'는 개인적인 고민뿐만 아니라 인간 전체의 문제일 것이다. 문학이 갖는 사회적 의미 중 한 가지가 이런 것이 아닐까."

심사위원들은 수상작을 읽고 "은희경씨의 초기 작품이자 수작인 '새의 선물'을 떠올리게 한다"고 평했다. 신춘문예에 당선됐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아 가슴을 앓던 때, 그는 독한 마음을 품고 절에 들어가 '새의 선물'을 완성했다. 작가는 "짧게나마 문청 시절을 격렬하게 겪었다"고 그 시절을 회상한다. 은씨는 두 아이의 엄마였으며 출판사에 다니다가 느지막이 등단했다. '이런 식으로 인생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절망에 빠졌고, 그 절망에 채근당해 소설을 쓰게 됐다. "무엇인가 시작하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절망이 필요한 것 같다"고 은씨는 돌아본다. 그는 내년 봄부터 문예지에 새 장편소설을 연재한다. 1960, 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부모의 사랑을 두고 갈등하는 형제의 이야기다.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 약력

1959년 전북 고창 출생

1981년 숙명여대 국문과 졸업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이중주' 당선 등단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상속'(수상작 '누가 꽃피는 봄날 리기다소나무 숲에 덫을 놓았을까' 수록) 장편 '새의 선물' '그것은 꿈이었을까'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마이너리그' 등

동서문학상(1997) 이상문학상(1998) 한국소설문학상(2000)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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