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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회 한국일보문학상 /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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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회 한국일보문학상 / 심사평

입력
2002.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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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중편 하나와 단편 일곱, 모두 8편이다. 8편을 정독하고 회동한 심사위원회는 우선, 예심 위원들이 고선(考選)한 작품들을 통해 드러난, 지난 1년간 우리 작단의 추세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우리는 재기가 반짝이는 작품들이 많다는 점에 고무되었다. 그리고 그 수준의 향상이 서사의 골격이 살아나고 있는 것과 호응하고 있는 점에 더욱 주목하였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건조한 페시미즘으로 기운 경향도 눈에 띄었다. 최근 우리 문학에 분노가 사라졌다. 한국사회에 대한 자본의 포섭력이 강화되고 있는 경향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도 작가들은 출구에 대한 탐색을 자제하고 있다고 할까? 마치 외국영화를 보는 듯한 작품들이 증가하는 것도 그 반영일 터이다.

확실히 한국소설은 이행기에 들어섰다. 물론 이행이란 좋은 것이다. 그런데 그 이행이, '지금 이곳'의 현실 또는 일상을 더 깊은 눈으로 탐구함으로써 서사의 새 길을 개척하는 방향으로 자리잡기를 우리는 희망한다.

강영숙 박성원 윤성희의 작품에도 유의했지만, 우리는 김영하와 은희경을 집중적으로 토론하였다. 김영하는 '오빠가 돌아왔다'에서 능란한 이야기꾼의 수완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왜곡과 과장에 기초한 소설적 특권을 행사하여 우리 시대 가족의 평균적 풍경을 드러낸 이 작품의 사회적 함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는, 그저 하나의 이야기로 기운 점이 아쉽다.

은희경의 '누가 꽃피는 봄날 리기다소나무 숲에 덫을 놓았을까'는 다시 쓴 '여자의 일생' 또는 '귀여운 여인'이다. 지방 소도시 중산층의 딸로 태어나 보통의 시골아이들과는 달리 '작은 어른' 또는 어린 부르주아 여성으로 키워진 한 여성의 행로를 몇 개의 축, 유년 시절·결혼 생활·직장 시기를 중심으로 추적한 이 중편은 타인의 시선에 길들여진 여성의 '끔찍한' 초상을 리얼하게 그려냈다.

특히 남편의 조종에 의해 현모양처(賢母良妻)의 길에서 이탈하여 사회로 투신했지만 성공의 순간에도 실패하는 후반부의 처리는 통상적 페미니즘 소설과는 다른 구도를 보여주었다. 소시민여성으로 예약된 유년기와 주부생활은 물론이고 그로부터 탈출한 직장생활과 결정적 일탈로 보이는 불륜의 현장조차도 남성타자의 시선에 지배되고 있음을 작가는 냉정하게 그려낸다. 그 덫의 근원인 유년의 훈육과정에서 지방 소도시의 풍경을 기억 속에 복원하는 능력 또한 이 작가가 지닌 드문 재능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우리는 은희경을 수상자로 삼는 데 기쁘게 합의하였다. 은희경 문학의 새로운 고비를 충심으로 축하한다.

/심사위원=김치수 이문구 최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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