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해(Enough!). 제니퍼 로페즈의 이 말이 여러 가지 의미로 들린다. 하나는 배우로서 자신에 대한 평가. 모델과 가수까지 겸한 이 라틴계 만능 스타의 연기란 지금까지 고작 해야 '블러드앤 와인'에서 잭 니컬슨, '표적'에서 조지 클루니 같은 대배우의 들러리로 흉내내는 정도. 지난해 주연을 맡은 '웨딩플래너' 에서는 감정 없이 대사만 외는 로맨틱 코미디가 얼마나 한심한지 증명했다.페미니즘 냄새가 나는 '이너프'에서 그녀는 확실히 달라졌다. 도망자로서 제니퍼 로페즈는 나름대로 불안과 초조, 공포의 분위기를 탈 줄 안다.
'행운의 반전' '다크엔젤'의 니콜라스 카잔의 시나리오 덕도 있지만 뻣뻣하던 몸도 예전보다 한결 부드러워졌고 대사도 많이 나아졌다. 물론 조디 포스터나 줄리아 로버츠에 비하면 한참 멀었지만 로페즈로서는 일단 만족!
주제에 따라 단락을 나눈 '이너프'는 명백하지만 법으로는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그래서 더욱 끔찍하고 잔인한 폭력과 공포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생아나 다름없이 태어나 가난하게 자랐고, 지금은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여자 슬림(제니퍼 로페즈)의 소망은 안전이었다. 안전한 결혼, 안전한 가정, 안전한 부부.
뜻밖에도 쉽게 찾아왔다. 자신을 놀리는 남자를 혼내준, 자상하고 정의로운데다 돈까지 많은 남자 미치(빌리 켐벨)와의 결혼과 딸 그레이시의 출생. 슬림은 '너무나 충분한' 행복에 빠져, 주인이 팔지 않으려는 저택을 끝내 손에 넣으며 "원하는 것은 반드시 얻는다"는 미치의 말이 가져올 공포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 공포는 너무나 가까운 곳에서 빨리 찾아왔다. 딴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따지는 그를 마구 때리며 무조건 굴복을 강요하는 미치에게서 슬림은 숨겨져 있던 야비함과 남성우월주의, 집착을 발견했다.
이때부터 영화는 '도망자'가 된다. 딸과 함께 탈출한 슬림을 미치는 끈질기게 추적한다. 친구 지니(줄리엣 루이스)와 로비(노아 와일)의 도움을 받고 이름까지 바꾸지만 끈질기고 영악한 남자 앞에서 안전한 곳이란 없다. 무작정 찾아간 변호사 역시 어떤 희망도 주지 않는다. 이럴 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방법은 하나 뿐. 눈에는 눈이다. 혼자 맞서 싸우는 수 밖에. 정당방위를 가장한 남편 죽이기. 황당하지만 슬림은 석 달 동안 이스라엘 여군들의 격투술인 크라브마가를 배운다.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해. 남들이야 뭐라고 하든." 감독은 '넬' '007 언리미티드'의 마이클 앱티드. 15일 개봉. 15세관람가.
/이대현기자 leed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