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운동의 영향으로 이제 모든 아파트에는 쓰레기들을 소각이나 매립을 통해 폐기해야 할 쓰레기들과 재활용할 쓰레기들로 분류한 여러 쓰레기통들이 자리잡게 됐다. 그리고 이 쓰레기통 앞을 지나갈 때면 정치인들도 연말마다 이 방식대로 폐기해야 할 쓰레기들과 재활용해야 할 정치인들로 분류해 그대로 처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이와 관련, 한국정치에서 대통령 선거의 주된 기능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참담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 정치에서 대통령 선거의 주된 기능은 폐기처분해야 할 구제불능의 쓰레기 정치인들을 재활용해 수명을 연장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쟁을 위해 각 후보 진영들이 세 불리기를 위해 앞을 다퉈 옥석을 가리지 않고 낡은 쓰레기 정치인들을 영입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대통령 선거가 자기 진영의 개혁성을 강화하여 이 같은 개혁성과 깨끗함을 통해 경쟁하는 건설적 경쟁이 아니라 상대방이 쓰레기 정치인까지 영입해 몸집을 불리면 이에 맞서기 위해 나 역시 몸집을 불려야 하는 악순환 경쟁이 되어 왔다. 군사독재 세력을 상징하는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죽여도 죽여도 다시 살아나는 강시처럼 40년이 넘도록 버젓이 살아 남아 아직도 입김을 행사하고 있는 것도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의 분열과 악순환 경쟁 때문이다. 철새 정치가 근절되지 않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올 대선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그나마 각 진영이 지켜온 원칙들이 깨지면서 악순환 경쟁이 가속화하고 있다. 우선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35%대에 고착된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얼마 전 '큰 바다 정치'라는 이름 아래 무차별 영입과 화해 전략에 나섰다. 이 같은 흐름이 이회창 대세론 확산으로 이어지자 이번에는 위기 의식을 느낀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 진영이 그간의 입장을 바꾸어 무원칙한 후보단일화를 서두르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다시 이회창 후보 진영을 자극해 민주당, 자민련의 철새 정치인들의 영입을 재추진하고 일찍이 정치 생명이 끝났어야 할 낡은 쓰레기 정치인들과의 화해, 영입 작업을 가속화하는 악순환 경쟁으로 나타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사실 노 후보의 경우 이 칼럼 10월23일자(노무현 실험의 미래)에서 지적했듯이 그 동안 이 같은 세 불리기 경쟁에 저항해 원칙을 지켜 왔다. 그런 만큼 실망도 크다. 그리고 그나마 원칙 있는 후보단일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자신들에게 어느 것이 더 유리한가하는 선출 방식의 협상에 목을 맬 것이 아니라 단일화가 의미가 있도록 상당한 차이가 있는 두 후보의 정책에 대한 협상을 먼저 추진해야 한다. 정몽준 후보의 경우도 세 불리기가 차질을 보이면서 초기의 원칙을 버리고 용도폐기 된 쓰레기 정치인까지도 영입했다. 또 지지율이 떨어지자 군사독재의 핵심 하수인으로 수 차례 사법적 심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에 의해 피선거권을 회복해 대통령 출마를 선언한 장세동 전 안기부장을 만나 협력을 다짐한 것은 악순환 경쟁의 또 다른 예이다.
이회창 후보의 큰 바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박태준 전 국무총리, 박근혜 의원과의 회동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구악 정치인의 대표적인 인물로 2000년 총선 당시 총선시민연대가 낙선대상으로 지명했고 이 후보 자신이 이를 수용해 공천을 주지 않아 민국당을 만들어 나가도록 만든 김윤환 전 의원 등과도 화해를 모색하겠다고 하는 데에는 할 말을 잃게 된다. 한 마디로 '큰 바다 정치'란 '큰 오물통 정치', '큰 폐수 정치'에 다름 아닌 셈이다. 이 같은 악순환 경쟁을 막기 위해서 쓰레기 종량제처럼 쓰레기 정치인 재활용 금지법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손 호 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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