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무적 섹스 심볼 변강쇠와 옹녀를 새롭게 바라본 연극 '오랑캐여자 옹녀'(배삼식 작, 김동현 연출)가 연강홀에서 공연되고 있다. 극단 작은신화가 올린 이 작품은 형식적으로 거친 면이 없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 면에서 볼 만하다.첫째, 관점이 새롭다. 희대의 난봉꾼과 요부로 알려진 이 유명한 커플을 억압적인 제도와 도덕의 희생양으로 보고 슬프게 그려낸 것이 그러하다. 괴질이 번져 민심이 흉흉해지자 강쇠 때문에 봉변을 당한 장승들은 강쇠와 옹녀를 괴질의 원흉으로 몰아 죽인다. 예상과 달리 야한 장면이나 성적인 코드는 거의 생략됐다. 그런 걸 기대했다면 실망할 것이다. 대신 살기 위해 비루해질 수 밖에 없는 구차한 목숨의 비극과, 그 질긴 명이 끊어졌을 때 다른 몸을 얻어 삶을 이어가는 윤회의 덧없음이 부각되고 있다. 비참한 죽음조차 우리 전통 장단과 몸짓에 얹어 한바탕 놀이처럼 연출한 감각이 시적이고 함축적인 대사와 더불어 돋보인다.
둘째, 옹녀 역의 길해연(38) 때문이다. '사물의 왕국'으로 올해 서울공연예술제 연기상을 거머쥔 그는 요즘 한창 연기에 물이 올랐다는 소리를 듣는다. 극단 작은신화의 창단 멤버로 1986년부터 쭉 활동해왔지만, 배우로서 솟아오른 것은 지난해 화제작 '돌날'부터다. 올들어 '양파' '사물의 왕국' '405호 아줌마는 참 착하시다'로 뚜렷한 인상을 남겼다. 그동안 주로 미치거나 히스테리컬하고 독한 여자 역을 해왔는데 이번 옹녀는 다르다.
"옹녀는 땅과 같은 여자예요. 뱀이 와도 품어주고, 지친 승려에게 무릎을 내주고, 닭이 와도 놀아주는, 아름답고 누구보다 정이 많으면서 한도 많은 여자이지요."
그는 작품의 마지막 장면이 쓸쓸하게 가슴에 와닿는다고 했다. 죽어 장승이 된 옹녀와 강쇠가 나누는 대화다. "나 안보고 싶었수?" "여기 있잖아, 여기. 저 꽃잎 위에도 바람 속에도 나뭇가지에도, 어디에나 다 있잖아." "가야지." "어딜?" "몸 얻으러." "뭣하러 또 몸을 얻어?" "해탈을 못했으니 별 수 있어?" "언제 또 보우?" "글쎄다."
공연은 17일까지 계속된다. (02)764―3380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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