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 16차 전국대표대회(16대)를 계기로 정치국 상무위원으로의 승진이 확실한 뤄간(羅幹·67) 중앙 정법위 서기는 개혁파 견제에 선봉장이 될 보수파의 대표 주자이다.그는 1998년 출범한 주룽지(朱鎔基) 내각 국무위원 10명 중 유일한 보수파였다. 리펑(李鵬·74)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과 장춘윈(姜春雲·72) 상무부위원장 등 보수파 거두들이 16대를 기점으로 은퇴한다고 보면 그는 단연 보수파의 수장이 된다.
羅 서기는 개혁파의 바다에서 고군분투해야 할 처지이지만, 그의 능력을 잘 알고 있는 개혁파들은 그에 대한 견제의 끈을 결코 놓지 않을 것 같다. 중국 정가에서 리펑의 '꾀주머니'로 통하는 그는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의 장자방인 쩡칭훙(曾慶紅) 전 당 조직부장에 대비된다. 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당시 단식 전 학생들이 식사하는 장면을 단식투쟁 중에 하는 것으로 교묘히 화면을 조작해 여론의 흐름을 바꾼 것도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의 지모는 93년부터 9년 간 중국 공안부와 국가안전부를 총괄하는 중앙정법위 부서기 및 서기를 역임하면서 구축한 정보 네트워크와 맞물려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李 상무위원장은 퇴임 후 자신과 측근들이 부패 혐의로 소추받을 것을 우려해 羅 서기를 당 중앙기율 서기로 추천한 것으로 전해졌다.
단순 이론가가 아닌 행정능력을 갖춘 기술관료 출신이라는 점도 羅 서기의 강점이다. 88년 리펑 당시 총리에 의해 국무원 비서장(총리비서실장)으로 발탁된 그는 리펑을 5년 간 보좌하면서 행정능력을 인정 받았다. 일찍이 그는 70년초 제1기계공업부 근무 당시 기계공업부 외사국장이던 장쩌민 주석과도 교분을 쌓기도 했다. 그가 보수파 입장을 대변하더라도 개혁에 제동을 걸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은 그의 이같은 행정경력에 바탕을 둔 것이다.
羅 서기에게는 우등생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녔다. 베이징 강철학원 수학 중 유학생으로 선발됐고, 귀국 후에는 주목할 만한 연구 업적을 남겼다. 어학 능력도 뛰어나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에 능통하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 뤄간 약력
▲1935: 산둥(山東)성 지난(齊南) 출생
▲53∼54: 베이징 강철학원 압력가공 전공
▲55∼56: 구 동독 라이프치히 강철공장 근무
▲56∼62: 프라이부르크 야금학원 주조학과 졸업
▲60 : 공산당 입당
▲62∼80: 제1기계 공업부 기계연구원, 주임
▲80∼81: 허난(河南)성 수출입관리위 부주임
▲81∼83: 허난성 부성장
▲83∼88: 전국 총공회 부주석
▲87 : 당 중앙위원
▲88 : 노동부장, 국무원 비서장(∼98)
▲97∼ : 정치국원, 중앙 서기처 서기, 중앙 정법위 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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