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와 국민통합 21 정몽준(鄭夢準) 후보간 후보 단일화 협상 과정은 마치 의도적으로 연주하는 '불협화음'같은 느낌을 준다. 협상 결렬을 목표로 제안과 역 제안을 주고 받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는 얘기다.11일 심야 협상에서 양측은 일단 TV토론과 여론조사를 대전제로 한 뒤 여론조사의 대상을 일반 국민으로 할지, 아니면 대의원만으로 할지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노 후보측은 협상에서 3만∼7만명의 일반 국민 선거인단이 전자투표를 하는 경선 방식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면서도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방식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정 후보측이 제안한 양당 대의원만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는 '민주당의 분열을 조장하려는 교란 전술'이라는 이유로 절대 수용불가를 고수했다. 일반 국민과 대의원을 모두 여론조사 대상에 포함시키는 절충형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노 후보측 입장이었다. 이렇게 12일 새벽까지만 해도 여론조사의 대상 범위가 최대 쟁점이었는데 12일 오전 정 후보측이 쟁점 타결을 위한 후보간 단독 회담을 제안하면서 협상의 초점은 후보간 회담 성사 여부로 옮겨졌다. 어느 측의 제의가 새로운 것이냐에 따라 공세와 수세가 바뀌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이러한 협상 전개 양상은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다. 당초 단일화에 적극적이었던 쪽은 여론조사에서 앞서가던 정 후보측이었고 노 후보측은 정책과 노선의 차이를 들어 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정 후보는 "단일화는 국민의 뜻에 따라야 한다"고 노 후보를 압박하기도 했다. 노 후보가 3일 TV토론과 국민참여경선의 보장을 전제로 후보단일화 반대의 빗장을 풀면서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노 후보가 오히려 단일화에 적극적인 모습으로 바뀌었다. 정 후보는 노 후보측의 국민경선 주장에 대해 "공당의 후보라도 여론의 지지가 낮으면 사퇴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해 국민의 여론을 최우선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들은 또 한번 역전된다. 노 후보는 선대위와 사전 협의 없이 10일 밤 전남 순천에서 김경재(金景梓) 홍보위원장의 입을 빌어 여론조사 방식의 단일화도 수용할 수 있다는 '원칙의 훼손'을 감행했다. 이때는 노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상승세로 돌아선 뒤였다. 노 후보가 국민 여론을 존중하겠다고 나서자 이번엔 정 후보측이 11일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하면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결과를 왜곡시킬 수 있다며 양당 대의원만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하자고 역 제의를 했다. 이들에게는 후보단일화가 절박한 과제이기는 하지만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이 불과 보름 사이에 일어난 일임을 감안하면 단일화 의지가 의심 받을 수도 있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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