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대장 출신으로 1990년대 초 보건사회부 장관을 지낸 안필준(安弼濬·70)씨는 장관직을 그만 둔 직후 황혼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의과대학에 유학, 68세에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 후 그는 '한석건강연구소'를 설립, 노인문제를 연구하면서 노년 인생의 맛과 멋을 새롭게 깨닫고 있다. 군 시절부터 몸에 밴 '새벽 4시 기상'은 그에게 활력을 불어넣는 변함없는 습관이다.나는 61세가 되던 1993년 초 보건사회부 장관을 끝으로 40년간의 공직생활을 마감한 뒤 곧바로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東京)대학 의학부(의과대)에 입학했다. 세계 최장수국가인 일본의 노인복지정책을 배워 우리나라 노인복지 향상을 위해 봉사하기 위해서다. 세계 어느 나라의 의과대학에든 입학할 수 있는-보건관련 장관을 지낸 사람에게 주어지는 특권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연구생 자격을 썩히는 것도 아까웠다.
도쿄대 의학부 국제보건학과에는 세계 14개국에서 30여명의 객원 연구원이 유학 와 있었고,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의 보건·복지정책 강의가 열렸다. 나는 5년 동안 이 강의를 수강했다.
남는 시간에는 도쿄도(東京都) 노인문제연구소에 나갔다. 이곳의 시미즈 유다카 연구부장은 2주동안 2권의 책을 읽고 주요 내용과 소감, 의문점을 적어 제출하라는 과제를 내주었다. 이미 초로의 나이에 서울대 행정대학원 연구과정, 연세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나였지만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 딱딱한 도서관 의자에 앉아 하루종일 책을 읽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관광은 고사하고 그렇게 좋아하는 골프채 한 번 잡아보지 못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자 시미즈 부장은 "향학열에 감탄했다"며 도쿄의 토호(東邦)대 의대 공중보건학교실에서 상근 연구원으로 노인 보건학을 연구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다. 여기서 나는 일본 공중보건학계의 태두로 추앙받는 도요카와 히로유키 교수를 만났다. 그는 6개월간 나를 테스트한 뒤 의학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지도해 주었고 마침내 일본에 간 지 3년 만에 '한국 농촌과 중국 옌볜 농촌의 노인질병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을 완성했다.
논문을 검토한 도요카와 교수는 저명한 '민족위생'지에 논문을 게재하라고 권했다. 토호의대에는 저명 전문지에 논문을 게재하면 박사학위를 주는 제도가 있다. 격월로 발간되는 '민족위생'지는 편집위원들이 모두 학계의 저명한 교수로 구성된 데다 연간 800편 내외의 논문 중에서 30편 정도만 엄선해 게재할 정도로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 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의학 전문지. 제출한 지 한 달 만에 돌아온 답신은 '내용은 매우 좋지만…'이라는 논문 수정 지시였다. 낙심한 나에게 도요카와 교수는 일단 논문으로 인정받았으니 고쳐서 제출하면 된다고 위로해 주었다.
하지만 나는 2차, 3차, 4차 수정을 거치면서 누적된 과로로 쓰러지고 말았다. 아들과 딸도 "육군대장에다 장관으로 만족하실 일이지 어머니까지 고생시키십니까? 박사하려다 박살난 사람 많습니다. 건강 생각해 그만 돌아오세요"라고 재촉했다. 하지만 나는 기어이 5번째 논문을 제출했고 천신만고 끝에 1998년 4월 마침내 의학박사 학위를 가지고 귀국했다.
귀국한 뒤에도 나는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2000년 초 '55세부터 꿀맛 인생이어라-노인이 멋지고 건강하게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노후생활 지침서'라는 책을 펴냈다. 언론들은 모두 호의적인 평을 내렸고 누가 이런 책을 사겠느냐는 우려와는 달리 발간 3개월 만에 6쇄가 나왔다.
나는 매일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원고를 쓰거나 책을 읽는다. 또 매주 토요일 새벽에 방송되는 KBS2라디오 '언제나 청춘'에 나가고, 노인신문인 시니어스타임즈에 고정적으로 글을 쓰는 등 한창 때 이상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나의 관심은 주로 우리나라 노인들의 건강증진 방안과 낙후된 노인복지정책의 개선안을 제시하는 일이다. 이외에 매년 한 번씩 일본 토호대에서 특강을 하고, 일본 노인문제 국제세미나에서 강연도 한다.
물론 건강관리에도 신경을 쏟는다. 오전 6시부터 걷기, 맨손체조, 복식호흡, 목욕 등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노인보건복지 세미나를 비롯한 각종 행사도 자주 찾는다. 지난해에는 서울대 보건대학원 최고관리자 과정도 수료했다.
지금은 대한노인회 부회장으로 봉사하면서 노인권익 향상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앞으로는 지금까지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나라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데 젊음을 바친 노인들이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투쟁하고 봉사할 생각이다.
안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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