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부동자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장기 침체에 빠진 주식시장에도 단기 매매차익을 노린 '뭉칫돈'들의 눈치보기가 극심해지고 있다.금융업계에선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시중을 떠도는 초단기 자금이 320조원을 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화증권은 11일 "은행 요구불예금처럼 단기예금 형태로 들어있는 부동자금이 10월말 현재 사상 최고치인 321조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금리 동결과 부동산 안정대책 등의 영향으로 증시를 기웃거리는 돈은 늘었지만, 본격적인 참여는 유보한 채 단기 차익에만 치중하는 '게릴라성' 투자패턴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특히 개인 '큰손'들은 알짜 공모주 청약과 고수익 채권 등 투기종목을 오가며 메뚜기식 '단타(短打)매매'만 일삼고 있다.
■미어 터지는 공모주시장
최근 코스닥 공모주시장에는 사상 유례없는 뭉칫돈이 몰려들고 있다. 지난달 21, 22일 이틀간 실시된 NHN의 공모주 청약에는 1조7,000억원, 그 직후 실시된 파라다이스 청약에는 2조4,000억원의 자금이 쇄도했다. 지난해 최고였던 안철수연구소의 청약대금 1조4,700억원, 코스닥시장의 하루 거래대금이 1조원 미만인 점 등을 감안하면 천문학적인 액수인 셈이다.
7일 마감된 하이스마텍의 공모주 청약 경쟁률은 710대 1로 올해 청약을 실시한 기업 중 최고를 기록했다. 56억원 규모의 공모에 5,000억원 이상의 청약자금이 몰렸다. 주간사인 미래에셋증권은 "NHN의 경우 6개 증권사가 공모주 청약을 담당했으나, 하이스마텍은 미래에셋이 단독으로 청약을 받았다"면서 "이를 감안하면 하이스마텍 경쟁률이 최고기록을 갱신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공모주 청약이 끝나고 환급된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유입되지 않고 있어, 일단 청약만 받으면 은행으로 다시 향하는 '단기 대박성' 투기자금인 것으로 보고 있다.
■특정 종목 투기성 거래
5일 코스닥에 등록한 외국인 전용 카지노업체 파라다이스는 주가가 고평가돼 있다는 경고에도 불구, 3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며 시가총액 8위로 올라섰다. 거래량은 6일 1,000만주를 넘어선 데 이어 8일과 11일에도 2,000만주를 웃돌았다. 투신 등 기관이 보유물량을 대거 처분하고 있지만, 개인들이 메뚜기떼처럼 몰려들어 이 물량을 거둬들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주가가 단기 급등하면서 고평가됐는데도 불구, 놀라울 정도로 많은 거래량 때문에 강세를 보이고 있다"면서 "이미 투신사 하이일드 펀드에 배정된 물량(1,035만주)이 대부분 쏟아져 나온 상황에서 개인들이 매수, 매도 대결을 펼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고수익 채권시장 북새통
투신업계에서 판매하는 비과세 고수익 고위험 펀드에도 뭉칫돈이 쇄도하고 있다. 현대투신운용 채권전략팀 관계자는 "그동안 개인은 정기예금 금리를 웃도는 AA-등급의 우량 회사채에만 관심을 보였으나, 최근엔 고금리를 내건 BBB-급 회사채에도 수요가 몰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양종금증권이 최근 판매를 시작한 세전금리 8.50%짜리 현대건설 회사채에도 고객들의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김병철 채권운용팀장은 "시중 정기예금 금리보다 3% 높은 고수익 상품이다 보니, 저금리 기조에 실망한 개인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주도주만 오르는 차별화 극심
현재 주식시장은 삼성전자 등 주도주와 주변주의 차별화가 갈수록 심해지는 양상이다. 동원증권은 최근 "상승 초기 국면에선 증시로의 자금 유입이 원활하지 못해 주변주를 기웃거릴 만큼 잉여자금이 없기 때문에 주도만 오르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강조했다.
시중 자금의 간접투자가 부진하고, 기관의 주식편입 비중이 높아 기관 매수가 지연되고 있으며, 개인 역시 눈치보기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10월 들어 개인의 직접 투자자금이 1조2,000억원 가량 유입됐으나, 이 중 8,000억원 상당이 순유출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 위탁자 미수금 변동규모가 하루 1,000억원을 오가는 등 돈을 빌려 치고 빠지는 단타매매는 갈수록 극성을 부리고 있다.
/고재학기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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