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부동산 경기를 진정시키고 경제의 거품을 제거하기 위해 올 3월과 5월에 이어 8월에도 부동산시장 안정대책을 내놓았다. 이러한 대증요법적 단기처방을 비웃듯 서울 강남지역에서 시작된 주택가격 상승세가 강북과 신도시 등으로 확산되자 9월 4일에는 양도세 비과세 요건 강화, 재산세 과세표준 상향조정 등을 중심으로 하는 부동산시장 종합대책을 발표했다.이 또한 기대 이하의 투기억제 효과가 나타나자 10월 11일에는 '투기지역'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고강도 처방을 내놓았다. 투기지역에서의 양도차익에 대해선 기준시가 대신 실거래가격을 기준으로 양도세를 부과하고 6억원 초과의 고가주택에 해당하면 1가구 1주택이라도 실거래가격으로 과세하기로 했다. 투기지역과 고가주택의 명확한 기준이 제시되지 않아 입법과정에서 적잖은 논란이 예상되며 따라서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고강도 투기억제책이 주택 투기수요를 일시적으로 잠재우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토지 투기수요로 비화하자 최근에는 수도권 면적의 67%에 달하는 지역을 '토지거래계약 허가구역'으로 묶는 초고강도 대책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이 대책은 행정편의주의에 입각한 과잉대응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앞으로 지가급등 가능성이 높다"는 막연한 이유로는 '허가구역' 지정기준이나 형평성을 둘러싼 시비를 잠재우기 어려울 것이다.
자고 깨면 신부동산 대책이 발표된다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로 빈번한 투기 대책이 제시되지만 그 실효성이 어느 정도 지속될 수 있을지에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빈번한 항생제 투약은 내성(耐性)을 키워 점진적으로 고단위 처방을 하지 않으면 약효가 발휘되지 못하듯 부동산 투기대책은 갈수록 고강도 처방이 발표되었지만 그 효력에 대한 국민들의 의구심은 날로 더해가고 있다. 외환위기로 인한 침체된 경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부동산경기 활성화대책을 마련하였던 것이 엊그제 일 아니었던가. 이와 같이 잦은 정책변경은 모든 경제주체로 하여금 정책에 대한 신뢰를 반감시키고 장기적으로는 정책의 불신을 낳고 그 효과를 훼손하게 된다.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국민의 불신이 정책목표를 달성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경제 외적인, 특히 정치적 동기에 의해 정책이 수시로 변경되고 이에 따른 일관성 결여가 국민의 정부에 대한 불신을 유발해 정책의 효과가 급락하게 된다. 하버드 대학의 펠드스타인 교수는 빈번한 제도변경은 국민들로 하여금 미래의 또 다른 제도변경의 우려를 초래하여 새로운 제도에 대한 신뢰도를 감소시킴은 물론 제도변경에 대비한 비효율적 비생산적 행태를 유발하므로 제도개혁의 효과를 충분히 얻을 수 없음을 경고한다.
경제위기의 와중에 국민의 성원 아래 출범한 국민의 정부가 각 분야의 개혁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잃어 개혁 효과가 실종되고 있어 안타깝다. 교육, 의료, 복지 분야의 개혁은 물론이고 4대 부문 구조조정 또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배경에는 지속적이고 일관된 실천의지 결여와 잦은 정책 변경으로 인한 불신을 빼놓을 수 없다.
신뢰회복의 첩경은 남은 기간 동안이라도 개혁의 지속적 추진과 함께 다음 정부에까지 중단없는 개혁이 정착될 수 있도록 제반 여건을 정비하고 마무리하는 것이다. 개혁이 장기적으로 정착되도록 제도화하는 것은 개혁의 결단보다 더 어려운 과제다. 개혁의 결단은 고독한 결정이고 때로는 독선이 용납되는 지도자의 몫이지만 개혁의 정착은 추진과정의 형식과 세부적 내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출의 성과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경제개혁 또한 단기간에 선진국 수준의 제도개선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진정한 개혁이라면 첫 걸음이 크지 않아도, 시끌시끌한 홍보를 하지 않아도, 지각 변동을 예고하는 개혁의 숨결을 국민이 느낄 수 있을 것임을 대선 주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이 만 우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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