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을 집대성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의 편지를 가려 뽑아 한글로 옮긴 '다산서간정선'(현대실학사 발행·사진)이 출간됐다. 다산이 유배지에서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모아 감동을 줬던 서간집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창작과비평사 발행·1991)를 보완한 것으로, 둘째 형인 손암(巽菴) 정약전(丁若銓·1758∼1816)이 다산에게 보낸 편지를 새로 추가했다.손암, 다산 형제가 1801년 신유박해로 각각 흑산도와 강진에 귀양 살면서 편지로 그리운 정을 나누고 지기(知己)가 되어 학문을 토론하는 모습은 한국 지성사에서 매우 보기 드문 광경으로, 다산 경학 연구의 진행 과정과 그 결실을 엿볼 수 있다.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은 시기는 대체로 1802∼1812년 사이로, 다산이 손암에게 보낸 편지 8통과 손암이 다산에게 보낸 편지 13통 등 모두 21통의 편지를 가려 뽑았다.
손암이 흑산도에 귀양 산 지 7년째 되는 1807년에 쓴 편지에는 다산이 귀양살이의 외로움과 고통을 견디지 못해 고향에 있는 가족을 강진으로 옮기려고 하자 엄중히 꾸짖는 대목이 나온다. 손암은 "(자손이) 하루 아침에 호남으로 낙향하면, 옛 선조의 대대로의 문벌을 누가 알아주며…우리들은 그만이거니와 다시 어찌 차마 죄없는 자손으로 하여금 각처로 떠돌아 이사하도록 해서 살아서는 나그네의 슬픔과 죽어서는 타향의 넋을 짓게 할 것인가"라며 다산을 다그친다. 다산은 이듬해 이사 계획을 포기하고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겨 안정을 찾게 된다.
다산은 손암의 저서인 '자산어보(玆山魚譜)'의 초고를 읽어본 뒤 책의 저술 방향과 구성에 대해 논평을 해주는가 하면, 귀양 중인 형님의 건강을 걱정해 개고기를 삶아먹는 법을 일러주기도 한다.
다산이 멀리 서울에 있는 아들들에게 독서법을 가르치고, 아들이 권력자들에게 자신의 사면운동을 하는 것이 얼마나 비굴한 일인지 꾸짖는 대목에서는 대쪽 같은 지식인의 모습도 보인다. 책 후반부에 한문으로 된 편지 원문을 함께 실었으며, 현대실학사 대표로 다산 집안(나주 정씨)의 후손이기도 한 정해렴(丁海廉·62)씨가 정리했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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