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미컬 아트(chemical art)를 아십니까.현대미술은 끊임없이 아이디어와 소재와 기법의 혁신으로 영역의 확장을 모색해왔다. 피카소는 미술을 '조사 연구'로 규정하고 "의도하지 않은 것을 발견하는 것이 나의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물리적인 동역학을 응용한 키네틱 아트가 20세기 중반 순수미술의 영역으로 정착했고, 한국의 백남준은 비디오 아트를 당당한 미술의 장르로 확립시켰다.
갤러리 사간(02―736―1447)이 기획해 8일부터 12월 1일까지 전시회를 여는 '케미컬 아트' 전은 화학적 신소재와 미술을 합일시키려는 새로운 시도이다. 기업 메세나(문화지원 활동)와 작가들의 상상력을 연결시켜 화학예술을 한국 미술의 대표적인 장르로 발전시키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다.
이기봉 장승택 도윤희 양만기 정재철 서혜영 박명래씨 등 회화 조각 사진 설치 등 각 분야 20∼40대의 중견·신진 작가 18명이 작품을 냈다. 갤러리를 들어서면 기존 진입로와 입구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버린 서혜영씨의 작품이 우선 눈길을 끈다. FRP로 만든 다양한 파형의 채광판으로 벽면과 천장을 꾸몄다. 전시장 입구 옆에는 홍장오씨가 역시 이 재료로 만든 연꽃모양의 작품 '적도의 낙원'이 저녁 무렵이면 환히 불을 밝힌다.
화가 도윤희씨는 투명 폴리코트를 사용해 두께 9㎝, 높이 2m 25㎝에 무게 500㎏에 달하는 거대한 새로운 회화를 만들었다. 재료를 한층 한층 쌓아가면서 각각 다른 이미지들을 그려 중첩했다. 평소 숲이나 식물 혹은 세포의 형상으로 자연과 생명의 문제를 제기해온 작가 특유의 이미지들이다. 그는 "겹겹이 쌓인 재료의 단층은 시간과 기억, 주장의 중첩"이라며 평면회화와는 또 다른 작업의 의미를 말했다.
평소 아이디어 넘치는 작품을 발표해온 양만기씨는 고무 지우개로 작품을 만들었다. 2㎝ 크기의 지우개 수천 개를 쌓아서 화면을 구성하고 그 위에 드로잉을 했다. 지우는 지우개의 임무와 그려야 하는 작가의 임무가 교감하는, 미술 본연의 의미를 되새기는 지점이기도 하다. 정재철씨는 수많은 종류의 유리병을 채집, 그 내부를 우레탄 거품으로 채워넣었다. 끓어오르는듯한 거품의 모습과 유리병에 붙은 상표들이 우리 일상을 되돌아보게 하는 작업이다.
이번 전시 준비를 위해 참여 작가들은 문예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애경화학과 문교산업 등 재료를 협찬한 기업들을 현장방문, 재료와 제품의 제작과정을 견학했다. 홍미경 갤러리 사간 대표는 "미술은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 발전해왔다"며 "케미컬 아트 전을 매년 정례화해 새로운 장르로 정립시켰으면 한다"고 말했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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