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나(미셸 로드리게스)는 흔해빠진 미국 맨해튼 빈민층의 삶을 그대로 상징하는 소녀다. 어머니는 일찍 죽고 아버지는 술 주정뱅이며 학교를 다니는 것은 노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 이런 소녀에게 희망을 갖고 있지 않다고 비난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걸 파이트'(Girl Fight)는 권투의 매력에 흠뻑 빠진 소녀의 이야기로 스포츠 영화가 그렇듯, 소녀의 성장과 맞물리면서 잔잔한 감동을 선물한다.다이아나는 꽤 다혈질 소녀다. 아버지의 돈을 몰래 훔쳐 권투도장에 다니다 들켜 혼이 나지만, 그런 아버지에 대항하는 방식 또한 꽤 폭력적이다. 아예 아버지를 때려 바닥에 눕힌다. "힘으로도 아버지는 나를 제압할 수 없다"며 다이아나는 어머니를 죽게 만든 아버지에게 분노를 폭발시킨다. 이런 장면을 보여 주었다면 이어 소녀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래도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당연할 텐데, 이런 화해 장치도 마련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이처럼 분노의 감정을 생생한 날 것으로 표현한 여자 주인공은 없었던 것 같다.
권투 도장에서 스파링 상대로 만난 유망주 애드리안(산티아고 더글러스)과 사랑에 빠진 다이아나는 혼성 경기에서 연승, 결국 애드리안과 맞대결 해야 하는 상황을 맞는다. 대결을 피하려는 애드리안에게 "여자라서 싸우지 않는다면 복싱 할 자격이 없다"고 우기는 다이아나. 둘은 결국 링에서 맞붙게 된다. "말론 브랜도 같은 여배우가 필요했다"는 감독의 말처럼 미셸 로드리게스는 불만에 가득 찬 권투 소녀의 이미지에 딱 어울린다.
'레지던트 이블' '분노의 질주'에서 보여주었던 눈빛이 '걸 파이트'에서 폭발할 것 같다. 여성감독 카린 쿠사마의 데뷔작. 2000년 선댄스영화제 최우수 감독상과 최우수 심사위원상, 칸 영화제 영시네마상 수상 등 저예산으로 만든 여성감독의 소녀 권투 입문기로는 평가가 꽤나 폭발적이었다. 15일 인사동 미로스페이스에서 개봉. 15세 관람가.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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