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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록](6)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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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록](6)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입력
2002.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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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52)은 어떤 가수라고 규정하기 힘들다. 워낙 다양한 음악을 만들고 부른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음악의 근간은 록이다. 1980년대의 무수한 히트곡 중 '어제 오늘 그리고' '그대여' '미지의 세계' '아시아의 불꽃' '여행을 떠나요' (이상 85년)와 '모나리자'(88) 등은 명백한 록 넘버다. 음악평론가 송기철씨는 "트로트로 분류되는 '허공'(81) '미워미워미워'(85) 같은 곡도 악기 편성 등 기본은 록"이라고 말한다. 조용필의 음악적 출발이 록이었을 뿐더러 조용필이 "위대한 탄생이 없는 조용필 음악은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하는 밴드 위대한 탄생 역시 그 뿌리와 틀을 록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은 대마초 가수들에 대한 규제가 풀린 직후인 80년 결성되었다. 전신은 74년 결성한 조용필과 그림자. 조용필은 그림자 이전에도 69년 파이브 핑거스라는 그룹의 기타리스트로 미8군 무대에서 록을 연주했고 70년에는 이남이와 드러머 김대환과 함께 김트리오로 활동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이 때 처음 불렀다. 72년에는 25시라는 밴드에도 잠시 있었다. "밴드로 음악을 시작한 내가 음악을 다시 할 수 있게 되면서 위대한 탄생을 조직한 건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말한다.

초기 멤버는 조용필이 미8군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검은나비 출신의 드러머로 현재까지 남아 있는 이건태와 곽경욱(기타) 김택환(베이스) 김청산(키보드). 하나같이 내로라 하는 실력파 연주자들이었다. 조용필은 보컬을 하며 틈틈이 기타도 쳤다. 밴드인데도 늘 같이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필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세션맨으로 다른 이들의 음반 또는 공연에 참여하는 독특한 형식이었다. 88년 조용필이 일본에 진출하며 해체한 위대한 탄생은 93년 다시 모여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유난히 멤버 교체가 잦아 사랑과 평화의 최이철을 비롯해 이호준 송홍섭 유재하 배수연 유영선 등 여러 명이 들락거렸지만 최고들이 모인 팀이라는 명성은 변하지 않았다. 트로트에서 발라드 록 민요를 아우르는 조용필의 노래를 저마다 다른 색깔의 연주로 뒷받침할 수 있었던 것도 탄탄한 실력 덕분이었다.

음악적으로는 조용필의 노래가 그랬듯 위대한 탄생도 70년대와는 다른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이전까지의 밴드에서 기타가 중심이었던 데 반해 위대한 탄생은 데뷔작인 '단발머리'(80)와 2집의 '촛불'(80) '못찾겠다 꾀꼬리'(82)에서 드러나듯 키보드가 중심이었다. 키보드가 2대인 때도 있었다. "70년대 중후반부터 미국에서는 현에 이어 키보드의 중요성이 커졌다. 키보드에 일찌감치 주목한 위대한 탄생은 덕분에 전보다 무게가 실린, 색다른 사운드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게 조용필의 설명이다.

확실히 '뿅뿅'대는 일렉트릭 드럼과 남성 보컬의 틀을 깬 '단발머리' 같은 곡은 악기와 보컬이 함께인 밴드가 아니면 생각할 수 없는 음악이었다. 음악 형식은 바뀌었지만 80년대의 젊음들에게 공감과 해방의 공간을 만들어주었다는 점에서는 전 시대의 기타 위주의 록과 다를 바 없었다. 록이 마니아의 음악이 되기 이전인 80년대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은 8군 출신의 맥이 끊기고 대학 출신 밴드만 남아있던 초반에서 록이 살아났던 후반에 이르기까지 젊음의 음악, 밴드의 음악으로서 록을 한 셈이다.

/김지영기자 koshaq@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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