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70대 초반의 혼자 사는 노인입니다. 아내와는 10년 전에 사별했고, 지금은 파출부의 도움을 받으며 지냅니다. 40년 넘게 개인사업을 하면서 3남매를 부족함없이 키운 것이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일이었습니다.지금도 자녀와 손자들을 보는 것이 가장 큰 기쁨입니다만, 뭐가 그리 바쁜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인데도 좀처럼 찾아오지 않습니다. 전번 제 에미 기일에도 두 며느리만 찾아오고 정작 자식들은 얼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겉으론 괜찮다고 했지만 외롭고 허전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김씨)
답>평생 가족만을 위해 헌신하시다가 외기러기 노인이 되어 느끼는 씁쓸한 고독이 눈에 보이는 듯 하군요. 상배 이후 새 인생을 살라는 주위의 온갖 유혹을 뿌리치고 성실일변도 생활을 하시는데도 돌아오는 것은 자식들의 무관심이니 참으로 허무하시겠습니다. 외기러기 할머니들은 손자 치다꺼리와 잔치음식 치다꺼리로 자식들 집에 빈번히 불려 다니는 반면 남자가 그리 되면 외톨이가 되어 맥이 빠지지요.
그래서 외기러기 할머니들이 오래 산다는 일본통계가 엊그제 나왔지요. 남자노인만이 사는 집은 어수선하고, 썰렁하고, 본인은 못 맡는 퀴퀴한 '노인냄새'가 코를 진동해 여자들이 질색을 합니다. 며느님들도 냄새를 맡겠지요.
아마도 두 아드님은 선생님 배려로 집도 얻고, 재산도 얻어 좋은 직장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것 같군요. 40대 한참 활동할 나이이니 어머니 제삿날에도 공적(公的)으로 자리를 비울 수 없었을 것이니, 그런 그들이 오히려 자랑스럽다고도 봅니다. 평생 개인사업을 하신 선생님과는 달리 아드님은 조직사회의 일원이라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어머님 생각을 했겠지요.
생활패턴을 좀 바꾸어 보시지요. 우선 젊고 신식인 파출부를 써 냄새와 분위기 쇄신에 주력해달라고 부탁하시고, 주위에서 중년여성 조언자를 구해 바람이라도 날 듯 젊게 차려 입으십시오.
부인 제사는 이제 큰 아드님에게 넘기십시오. 십년을 추모하신데다 연세도 70이 넘으셨으니 큰 아드님을 실질적 가장으로 만들면서 물러나실 때이지요. 삼 남매 자녀가족을 따로 따로 분위기가 근사한 식당으로 불러내 저녁도 사 주시고, 손자들에게 용돈도 찔러 주시면 좋아 할 것입니다. 며느리와 손자들의 환심을 사시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기쁨을 자식들에게서보다 선생님 자신과 친구들에게서 찾도록 하시고, 돈도 자신을 위해 더 쓰십시오. 단체관광여행과 친구들과의 해외여행도 자주 다녀오시고, 같은 또래 같은 처지 여자들 가운데서 말벗을 찾아 보시지요. 그러면 눈이 휘둥그레진 자녀들이 이러다 일 나지 않을까 해서 자주 찾아올 것이며, 지하의 부인께서도 씩씩하게 잘 한다고 박수를 치실 것입니다.
/서울대 의대 신경정신과 명예교수 dycho@dych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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