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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다시본다](5)제1부④체제 정당성 뒤흔드는 부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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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다시본다](5)제1부④체제 정당성 뒤흔드는 부패

입력
2002.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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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1990년대 들어 개혁·개방이 본격화한 이후 급속한 경제발전과 함께 부패 사례가 급증하고 그 규모도 날로 커지고 있다. 90년대 중반 장쑤(江蘇)성 장자강(張家港)시에서 발생한 부패사건은 100억 위안(1조 5,000억원) 규모로 탈세액만 60억 위안에 달했다. 이 사건에는 중앙정부 관리 200여명, 간부 당원57명이 연루됐다. 90년대 말 돌출된 푸젠(福建)성 샤먼(厦門)시 밀수 사건은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인

7조원에 달했다.

■급증하는 부패

80년대의 부패사건이 지방관료 차원에서 발생한 반면, 90년대에는 당 고위 관료들의 부패가 늘고 있다. 99년 한 해에만 성 정부 및 중앙부처 부장급 당원 17명이 당중앙 기율검사위원회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2000년에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의회) 상무부위원장이었던 청커지에(成克杰)가 뇌물 4,109만 위안을 받은 혐의로 사형에 처해졌다.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간부들이 직위를 이용, 사적 이익을 보호해주는 대가로 거액의 수수료를 불법으로 챙기는 일이 적지 않다. 정경유착으로 인한 중국의 부패는 탈세, 불법 유흥업소, 유통구조의 왜곡, 공금횡령, 밀수 등으로 다양하다.

부패의 구조적 원인들

개혁·개방 이후 부패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이유에 대해서는 비용-효율 이론으로 설명하는 시각이 있다. 부패로 인한 이익(뇌물 등)이 비용(처벌)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부패에 대한 유혹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혁·개방 이전에는 부패가 발각될 경우 직위 박탈 등 비용이 큰 반면, 반대급부로 제공되는 뇌물의 액수는 작았기 때문에 부패가 상대적으로 적게 발생했다. 그러나 개혁·개방 이후 사유재산 규모가 커지면서 뇌물 규모는 확대되고 위험 부담은 상대적으로 감소해 부패를 부추기고 있다.

개혁기에 부패가 만연하는 구조적 원인은 몇 가지로 지적할 수 있다. 첫째,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공존에 따른 부패 공간 형성이다. 국가가 생산·분배·판매를 결정하는 계획경제에서는 관료들이 행정적 권한을 독점하고 국유재산을 관리했다. 시장경제 도입 이후에도 계획경제 요소는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에 관료들은 시장에 개입하여 사적 이익을 추구할 여지를 갖고 있다. 민영기업가들은 개인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관료를 매수하여 시장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국유재산을 불하받고 경제적으로 유리한 정보를 입수하려 한다. 따라서 체제 전환기에는 관료와 민영기업가 간의 돈과 권력의 뒷거래에 의한 정경유착의 공간이 크다.

둘째, 불완전한 시장경쟁 체제가 부패를 부추긴다. 미성숙한 시장경제에서는 자유경쟁이 아니라 권력의 시장개입에 의해 자원배분이 결정된다. 예컨대 토지임대의 경우 관료가 얼마나 많은 땅을 누구에게 얼마에 임대할 것인지 자의적으로 결정함으로써 부패가 발생한다. 광둥(廣東)성 전인대 전 상무부주임 위페이(于飛)는 토지매각과 부동산 투기를 통해 자녀들이 1억 6,600만 위안의 차익을 챙길 수 있도록 한 적이 있다.

셋째, 인맥을 중시하는 문화가 탈법을 조장한다. 정치제도화 수준이 낮은 중국사회는 법치(法治)보다 인치(人治)가 지배적인 지위를 갖는다. 이런 사회에서는 제도적 절차보다 인간관계를 이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효과적이므로 부패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넷째, 황금만능적 가치관 확산이다. 공동체의 이익과 개인 헌신을 강조하던 사회주의적 가치관은 경제개혁 이후 퇴색했다. 시장경제 도입에 따라 중국인들이 돈의 중요성에 눈을 뜨면서 개인이익 중시, 황금만능의 가치관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돈만 벌 수 있다면 부패와 같은 불법적인 수단도 쉽게 동원된다. 많은 중국인들은 부패하지 않고는 큰 돈을 벌 수 없다고 믿는다.

■체제 위협하는 부패

개발도상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부패가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부패가 급격한 사회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직된 제도를 보완하고 희소자원의 원활한 분배를 도움으로써 경제발전을 촉진하는 윤활유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중국의 일상화한 부패는 경제발전을 촉진하기는커녕 경제발전을 가로막는 거대한 걸림돌로 작용한다. 관료부패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 확산은 공산당 통치의 정당성을 약화하는 정치적 위협으로 지적된다.

부패가 공산당의 일당지배 체제를 위협하는 양태는 다양하게 지적된다. 첫째, 지방간부의 부패는 농민의 대규모 저항을 야기해 농촌사회를 불안하게 한다. 90년대 중반 이후 지방간부들이 부과하는 다양한 명목의 과도한 세금으로 인해 농민 불만은 심각한 수준에 달했다. 후난(胡南)성에서는 지방정부의 무분별한 행정과 과중한 세금에 항의하는 2,000여명의 농민이 정부 차량과 기물을 파손하는 폭동사태가 발생했다. 간쑤(甘肅)성과 허난(河南)성에서도 유사한 시위가 이어졌다. 부정부패는 중국사회의 기층인 농촌불안을 낳는다는 점에서 중앙정부의 주목을 받고 있다.

둘째, 재화 분배의 불평등을 초래한다. 중국의 사회문제로 지적되는 도시 빈부격차는 부패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부패는 재화 분배의 불평등을 초래해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한다. 중국인들은 벼락부자들이 개인의 능력이 아닌 부당한 방법으로 돈을 벌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고위층 자제들을 일컫는 태자당(太子黨)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배경으로 경제적 이익을 위해 뒷거래를 하는 현실은 공산당 간부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킨다. 사회주의 정치체제를 갖고 있는 중국정부로서는 부패로 인한 빈부격차 심화가 평등을 외치는 공산당의 구호와 모순된다는 점에서 큰 정치적 부담을 갖는다.

■경제발전의 걸림돌

셋째, 경제발전에 걸림돌이 된다. 부패의 중요 대상 중 하나는 정부가 추진하는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다. 건설현장의 잦은 부실공사는 담당 간부들의 횡령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관료들의 다양한 기부금과 급행료 요구 등 부패는 투자매력을 떨어뜨림으로써 중국의 외자유치 환경을 악화하는 요인이 된다. 만연한 뇌물수수 행위가 불공정 경쟁으로 이어져 외국기업이 철수하는 사례까지 발생하는 상황이다.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은 8일 개막된 공산당 16차 전국대표대회(16大) 정치성과보고에서 부패추방을 강조하고 이를 위해 당 간부의 기강확립을 과제로 제시했다. 공산당 일당독재의 근거는 경제발전에 필요한 정치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당분간 정치개혁을 유보해야 한다는 논리에 기초하고 있다. 공산당 간부들의 부패가 경제발전에 걸림돌이 될 경우 중국 공산당은 밑으로부터의 정치개혁 요구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부패는 경제발전과 일당독재라는 공산당의 두 가지 목표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의 미래를 좌우하는 핵심 이슈라 할 수 있다.

이 민 자 (李民子)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

■차이나 핸드북 / 金權·權色교역 손실 年188조원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의 브레인인 후안깡(胡鞍鋼)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은 1990년대 후반 이래 부패로 인한 중국의 경제적 손실과 소비자 복지손실액을 매년 9,875억∼1조 2,570억 위안(188조 5,500억원)으로 추산했다. 매년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13.2∼16.8%에 이르는 액수다. 그는 실제 손실액은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각종 부패는 과도한 국가권력, 특히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자양분으로 한다. 중국에서 '권력경제(權力經濟)'라는 말이 나온 것은 이 때문이다. 정경유착에 따른 폐해로 해석될 수 있는 권력경제는 다양한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대표적인 것이 돈과 권력의 교환을 의미하는 '금권(金權)교역'이다. 뇌물이나 리베이트 등 불법적인 돈을 제공함으로써 담당기관으로부터 특혜적 허가를 받아낸다는 것이다.

중국판 '몸 로비'인 '권색(權色)교역'도 회자된다. 본인(여자일 경우)이 직접 성(性)상납을 하거나 고급 매춘부를 제공함으로써 특혜를 얻어내는 방식이다. 98년 꼬리가 잡힌 위앤화(遠華) 밀수 사건에서는 주범이 고급 매춘부를 고용한 별장으로 지방 고위관리들을 초대해 성상납을 했다. 별장 내부에 설치된 몰래 카메라에 찍힌 부정 장면은 나중에 관리들을 협박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59세 현상'은 관리들의 부패 경향을 묘사하는 용어다. 60세 정년퇴직을 앞둔 중견 관리들이 힘이 없어지기 전에 한 몫 챙겨 나가려는 유혹을 받는 경향이다. 이는 중앙부처 부장급 고위관리의 급여가 외국투자기업에 갓 취업한 대졸자 급여에 못 미치는 현실과도 무관치 않다.

/배연해기자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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