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가 유엔의 사찰을 수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인 가운데 무기 사찰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유엔 무기사찰단을 이끌고 있는 한스 블릭스 단장은 10일 "무기 사찰에 단호하지만 요령있게 임할 것이며 이라크를 자극하는 행동을 자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블릭스 단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이라크가 유엔 결의에 따라 30일 이내에 대량살상무기 보고서와 일반 공장 시설의 개요 등을 제출하는 것"이라면서 "45일 이내에 80∼100곳의 의혹시설을 점검할 것"이라고 구체적 사찰 방침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촉박한 일정과 이라크 내 관련 산업의 방대한 규모 등으로 인해 완벽한 사찰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상적인 절차대로라면 최소 1년 이상 걸려야 할 일을 60일 정도의 짧은 기간에 해내야 하므로 사찰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고,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할 구실을 찾는 데만 이용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무기사찰단이 대량살상무기 개발의 결정적 증거가 발견될 수 있는 의혹 시설에 대한 신속한 접근을 요구하기 어려운 상황도 사찰의 걸림돌이다. 이같은 행동은 이라크를 자극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고, 안보리에서 프랑스와 러시아측의 지지를 상실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측이 책임질만한 증거를 없애버리는 경우 사찰은 근본적으로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으로 선임된 리처드 루가 의원은 "현재 샴푸를 만들고 있는 시설이 과거에 탄저균을 제조했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라며 대량살상무기 개발의 증거를 입증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사찰이 어느 정도 이뤄지더라도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결의안의 표현대로 이라크가 '중대한 위반'을 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데 어느 한 사안이 '중대한 위반'인지 여부에 대한 논란이 일 소지가 많다.
전문가들은 '중대한 위반'을 판단하는 데는 개별 사건보다는 일정한 '경향'이 기준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필요한 서류 한두 건이 '실수로' 빠지는 것은 중대한 위반으로 보기 어려우며 사찰단을 속이려는 명백한 의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안보리 결의에 이를 판단할 주체가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은 점도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
또 이라크가 보고한 대량살상무기 실태에 대해서도 미국은 기존에 수집된 정보를 토대로 이라크가 누락했는지 여부를 입증해야 하는데 과연 미국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런 난점들 때문에 미 관리들은 이라크가 사찰에 협조하면서 시간을 끄는 것보다 차라리 사찰을 거부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미국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고 단계부터 허위 또는 누락을 이유로 '중대한 위반'을 주장하면서 군사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되는 것도 사찰이 완벽하게 수행되기 어렵다는 점을 전제로 한 것이다.
/남경욱기자 kwnam@ 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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