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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씨앗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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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씨앗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입력
2002.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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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주째 열매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은 가을을 보내고 싶지 않은,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초록 생명들이 침잠하는 겨울로 가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오늘 열매 이야기를 끝으로 그만 가을을 보낼까 합니다.열매들의 다양한 모습을 관찰하다 보면 꽃보다 재미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손 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봉숭아 열매는 말 그대로 아주 작은 자극에도 터져 씨앗을 사방으로 튕겨 보냅니다. 우리가 아는 도깨비바늘이나 도둑놈의갈고리-이름만 알 뿐 진짜 식물의 모습은 잘 모르는 분이 많겠지만-는 갈고리를 이용해, 진득찰이나 멸가치 같은 식물은 끈끈이를 활용해 사람들의 옷이나 동물들의 털에 무임승차합니다. 보다 멀리 퍼져나가기 위해서지요. 약삭빠르다는 느낌이 들지만 이 식물들이 거꾸로 달려 잘 떨어지지 않는 가시 같은 것을 고안하느라고 쏟았을 노력을 생각하면 역시 괜히 마음이 찡합니다.

새들에게 먹혀 번식하는 씨앗들은 새들의 눈에 잘 띄기 위해 원색의 껍질을 만들죠. 이들은 소화되기 전에 새의 뱃속을 탈출해야 하므로 설사약을 함께 제공합니다.

깽깽이풀은 부지런한 개미들의 힘을 빌립니다. 씨앗의 껍질에 달콤하고 영양가 있는 물질을 만들어 놓으면 개미들은 이것을 얻기 위해 부지런히 씨앗을 집으로 나르지요. 더러 중간에 흘리기도 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나서는 집 근처에 씨앗을 버리니 깽깽이풀의 씨앗은 그만큼 여행을 한 셈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식물들은 왜 힘겹게 씨앗들을 여행 보낼까요? 예전에 이야기한 대로 온갖 어려움을 딛고 세상 곳곳에 퍼져 종족이 번성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겠지요.

하지만 이것이 다는 아닙니다. 보다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이유는 부모가 되는 식물들과 경쟁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움직일 수 없는 큰 나무 밑에 씨앗이 떨어졌다고 생각해봅시다. 그 씨앗은 부모의 가지에 가려 햇볕을 받을 수도 없고 한정된 양분도 얻을 수가 없지요. 동물들처럼 능동적으로 자식에게 베풀 수 없는 식물들로선 갖가지 수단을 강구해 사랑하는 씨앗들을 먼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보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 부모 식물들의 애타는 마음은, 수능생을 자식으로 둔 우리네 부모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을 듯 싶습니다. 무자식이 상팔자란 말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혹은 식물이나 마찬가진가 봅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사 ymlee99@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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