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면 번화가마다 해방구를 찾는 수험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하지만 재수생 이모군은 여느 수험생들과 달리 외부와의 연락을 끊은 채 두문불출하고 있다. 시험문제가 지난 해보다 어려웠다고 하나 성적이 너무 떨어졌기 때문이다. 풀이 죽은 아들을 위로하던 부모도 네 탓, 내 탓을 하며 부부싸움을 벌였다. 이런 부모의 모습을 지켜보던 이군은 죽어버리겠다며 집 밖으로 뛰쳐나간 뒤 인근 공사장에서 술에 취해 손목을 칼로 긋는 자해행위를 벌이고 말았다.수능시험이 끝난 지금 수험생들은 온갖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발달학적으로 청소년기는 신체 변화만큼이나 감정도 변화무쌍한 질풍노도의 시기다. 청소년들은 질풍노도의 시기에 입시라는 틀 속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갇혀 있다가 갑자기 이 틀이 깨지면 아노미(anomie) 상태에 빠져들기 쉽다.
더욱이 이 시기는 논리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짙기 때문에 갈등을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 든다. 만약 그 충동이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면 이군처럼 약물남용이나 자해, 자살 등을 시도하게 되고 반대로 남에게 향하는 경우에는 폭행, 기물파괴 같은 반사회적 행동으로 치닫게 된다.
이렇게 아노미 상태에 빠진 수험생에게 부모가 해줘야 할 것은 자녀가 건강한 분출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부모가 먼저 안정을 찾아야 한다. 불안감은 전염된다. 부모가 흔들리면 자녀도 무너지게 되므로 안정감을 찾을 수 있도록 평소와 다름없는 집안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말하기보다 듣도록 노력한다. 자녀에게 무조건 좋은 말이나 위로를 하기보다는 마음을 헤아리고 고충을 잘 들어주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 셋째 짧은 편지나 포옹 등으로 사랑을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좀더 구체적인 도움을 받고 싶으면 대한신경정신과 개원의협의회에서 운영 중인 홈페이지(www.mindcare.co.kr)의 수험생 정신건강 클리닉을 방문해 조언을 구하는 것이 좋다.
/정찬호 정신과 전문의·마음누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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