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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론으로 본 대선후보 단일화 전망 / 상대불신 "죄수 딜레마"와 유사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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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론으로 본 대선후보 단일화 전망 / 상대불신 "죄수 딜레마"와 유사 상황

입력
2002.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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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에선 후보 단일화 혹은 연대 문제가 주요 쟁점이 돼왔다. 이번에도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간에 단일화를 둘러싼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국가권력을 놓고 벌이는 게임인 만큼 후보와 지지자들은 한치의 양보없이 밀고, 당기고, 분열시키고, 비난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당연히 "유력 후보들이 잘 협의해 이번엔 A가, 다음엔 B가 하는 '윈-윈 방식'을 택하면 서로가 살텐데 왜 서로가 죽는 싸움을 하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법하다. 윈-윈 게임을 할 수 있는데도 굳이 최적의 선택을 피해가는 이 같은 현실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한국과학기술원(KAIST) 수학과 한상근 교수는 이에 대해 "이 현상을 이해하는 데에는 수학자 존 내시가 창안한 게임이론이 유용하다"고 말한다.

최적의 선택을 피하게 되는 것은 나의 이익이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입히는, 얽히고 설킨 이해관계가 있을 때 흔히 발생한다. 이를 이론화한 것이 바로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실제 주인공인 존 내시가 창안한 게임이론이다.

먼저 노무현,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가 성사될 수 있는 수학적 조건을 따져보자. 세 후보의 지지도가 이회창>정몽준>노무현 후보라 할 때 이를 분석하면 정 후보 지지층은 정>이>노, 정>노>이 후보 순으로 선호하는 2가지 그룹이 있다. 앞의 그룹은 노 후보로 단일화하면 이 후보에게 표를 던질 이들이다. 노 후보 지지층 중에서도 노>이>정 후보 순으로 선호하는 그룹은 정 후보로 단일화하면 이 후보에게 투표할 것이다.

따라서 정 후보 지지자에 노 후보 지지자 중 이 후보보다 정 후보를 선호하는 지지자를 더한 숫자가 이 후보 지지자에 노 후보 지지자 중 정 후보보다 이 후보를 선호하는 지지자를 더한 숫자보다 많을 때 정 후보로의 단일화 압력을 받게된다. 노 후보로의 단일화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선호도 조사만으로 단일화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게임이론의 대표적 예인 '죄수 딜레마'게임을 보자. 두 공범이 붙잡혀 따로 조사를 받는다. 만약 두 범인이 범죄를 부인하면 둘 다 무죄이지만 둘 중 하나라도 자백한다면 자백하지 않은 범인은 징역 20년, 자백한 범인은 징역 8년형을 받을 상황이다. 범인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두 죄수가 함께 최대의 이익을 얻으려면 둘 다 부인해야 한다. 그러나 죄수들은 상대방이 자백해 자신만 징역 20년을 살 것을 우려해 결국 모두 자백하게 된다. 즉 더 나은 선택(둘 다 무죄)을 포기하고 차선책(둘다 징역 8년형)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이 선택이 내시 균형이다.

두 후보의 단일화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 가깝다. 후보들은 제한된 유권자의 표를 놓고 경쟁하기 때문에 한 후보의 이익(당선)은 곧 다른 후보의 큰 손해(낙선)로 연결된다. 후보들은 다른 후보가 양보하고 자기로 단일화하는 것을 최선의 선택으로 여긴다. 이어서 (누가 당선되든) 나의 정치적 입지가 강화될 것이냐는 판단에 따라 전략의 우선순위를 정할 것이다. 예를 들어 두 후보 모두 자신이 사퇴해 정치적 입지를 잃는 것을 최악으로 여긴다면 아무도 후보단일화에 양보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제 3 후보의 당선이 최악이라고 판단한다면 단일화는 성사될 가능성이 있다.

두 후보가 안가에서 은밀히 만나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를 밀고 양보한 사람에게 차기 정권에서 중책을 맡기자"고 합의하는 윈-윈 게임은 불가능할까? KAIST 테크노경영대 안병훈 교수는 "죄수들을 같은 방에 가두어도 죄수 딜레마의 선택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기들끼리는 '부인하자'고 합의해도 검사 앞에선 다른 죄수가 자백할 최악의 상황을 떠올려 결국 자백하게 된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비슷한 게임으로 학생들의 모의 실험을 해 보면 서로 의논을 해도 거의 죄수 딜레마와 같은 내시 균형이 나온다"고 말했다. 후보들이 얼굴을 맞대고 단일화를 논의하더라도 상대를 전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안 교수의 모의실험에선 간혹 예외가 생긴다. '약속을 깨뜨리면 점심을 산다'는 등의 '이면계약'을 한 경우다. 특히 게임이 한번에 끝나지 않고 반복될 때, 약속위반에 대한 벌칙이 주어진다면 윈-윈게임의 가능성이 높다. 한 예로 쇼핑업체들이 '최저가격 보상제'를 경쟁적으로 시행하면 오히려 평균가격이 오르는 경향이 있다고 보고돼 있다. 한 업체가 가격을 내리면 다른 업체들이 더 값싸게 가격을 책정, 결과적으로 지불해야 할 비용이 막대해지기 때문에 오히려 업체간 협조를 공고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후보들의 '이면계약'이 얼마나 유효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정치인들은 선거를 반복게임으로 보기보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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