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회이든지 과학이 있고 예술이 있으며 종교가 있다. 과학적 사고는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원시 사회에도 눈비와 추위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하고,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살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하는데 이러한 것은 모두 과학적인 사고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예술도 그렇다. 예술은 현대사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 원시 사회에도 음악이 있고 춤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사람은 현대인이거나 원시인이거나 죽음과 재앙에 대한 두려움이 있고, 무한 생명을 가지고 절대 세계에 살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에 어느 사회에나 초자연적 신앙, 가지가지 형태의 종교가 있다.
종교적으로 우리나라는 참으로 오래 동안 무속과 더불어 불교적 신앙에 젖어 살아왔다. 우리의 전통 문화를 알기 위해서나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반적 인생관이나 생활 심리를 알기 위해서도 불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뿐 아니라 수 천년 동안 사람의 마음을 탐구해 온 철학으로서의 불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 오다가 10여년 전에 우연히 일본의 불교학자 오다가 쓴 '불교의 심층 심리'(정병조 역·현음사·1983)를 읽고, 이 방면의 독서를 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크나큰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이 책은 불교가 인간의 마음, 인간의 의식·무의식 세계를 얼마나 정밀하게 그리고 얼마나 깊이 있게 탐구해 왔는지를 알기 쉽게, 현대적인 안목으로, 세세하게 그러나 지루하지 않게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도무지 깊이를 알 수 없는, 오묘 불가사의한 인간의 마음에 대한 불교적인 관찰은 실로 경이롭다. 그 후에 주위의 여러 사람들에게 한 번씩 읽어보라고 권한 바 있는데, 이 책은 실은 불교의 유식론을 소개한 것이다. 불교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심어줄 것이다.
최근에는 한문을 몰라도 불교 이론에 접할 수 있는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전남대 이중표 교수의 '불교의 이해와 실천'(대원정사·1996)과 같은 책도 불교의 기본 원리를 쉽게 알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것도 없다. 끝없는 흥미를 가지고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남 기 심 국립국어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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