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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90)국민회의 총재권한 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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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90)국민회의 총재권한 대행

입력
2002.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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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은 위기를 위기로 받아 들이지 않았다. 국민에게 진솔하게 사과하는 등의 정공법 대신 힘으로 밀어 붙이는 정면돌파만을 고집했다. 당무와 직접 관계가 없는 상임고문이었지만 나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1999년 5월31일 당 간부회의에서 나는 "시국이 매우 어렵고 민심 이반 또한 심각하다"며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책임질 사람은 한시 바삐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태정(金泰政) 법무장관의 사퇴를 촉구한 것이었다. 그러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민심을 '마녀 사냥식 여론몰이'로 치부했다. 검찰은 언론과 국민이 제기한 숱한 의혹을 제대로 풀기는 커녕 짜맞추기식 해명성 수사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성난 민심은 6월3일 재선거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서울 송파 갑과 인천 계양·강화 갑 재선거에서 여당은 완패했다. 검찰의 수사 발표에 실망한 유권자들은 정부의 독선적 국정 운영과 오만에 준엄한 심판을 내렸다.

6월7일에는 진형구(陳炯九) 대검공안부장이 취중에 "검찰이 조폐공사 노조파업을 유도했다"는 요지의 발언을 해 정치권이 떠들썩해 졌다. 옷 로비 사건의 덫을 가까스로 벗어났다 싶었던 김태정 법무장관은 결국 경질됐다. 한나라당은 조폐공사 파업 유도 의혹 사건을 계기로, 이 사건과 고급 옷 로비 의혹 사건 등에 대해 국정조사 및 특검제를 실시하자고 여당을 압박했다. 이 과정에서 공동여당인 국민회의와 자민련 지도부의 불협화음이 빚어졌고, 김대중 대통령은 김영배(金令培) 총재권한대행 등의 사표를 수리했다.

후임 총재권한대행 인선을 두고 하마평이 무성한 가운데 7월12일 아침 김 대통령이 직접 내게 전화를 걸어 총재권한대행을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 몇 시간 뒤 청와대에서 만난 김 대통령은 후임 당직자 후보 명단을 건네주었다. 사무총장 한화갑(韓和甲), 정책위의장 임채정(林采正), 원내총무 이해찬(李海瓚) 등이었다. 나는 이해찬 의원의 경우 교육계의 반발이 심해 "지금 당장 당직을 맡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 같다"고 재고를 요청했다. 여당의 총재권한대행이 대통령의 인선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김 대통령은 기꺼이 이를 받아 들였다.

총재권한대행에 취임한 지 열흘이 채 되지 않은 7월20일 김 대통령은 광주 시찰 도중 신당 창당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나는 때가 이르다고 여겼다. 국민들이 납득하기에 충분한 명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김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재고를 건의했다. 그러나 신당 창당에 대한 김 대통령의 결심은 확고했다.

대통령의 뜻이 그랬기에 결국 8월30일 국민회의는 제4차 중앙위원회를 열어 새로운 국민정당 창당을 공식 결의했다. 나는 장영신(張英信) 애경그룹 회장과 공동 창당준비위원장이 됐다. 2000년 1월20일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새천년민주당 창당대회가 열렸고, 당 대표에 서영훈(徐英勳)씨가 선출됐다.

창당대회 며칠 전 청와대 한광옥(韓光玉) 비서실장이 나를 찾아왔다. "대통령께서 당 대표로 서영훈씨를 영입하려고 하니 양해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나는 서영훈씨가 정치 경험은 없지만 큰 흠결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러자 한 실장이 "대통령께서 16대 국회 비례대표 앞 번호에 모시겠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나는 형식적인 사양의 말은 하지 않았다. "그래요? 어디 한번 지켜보겠습니다."

막상 16대 총선 후보 공천에서 청와대는 나를 비례대표 후보 4번에 공천했다. 솔직히 나는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 서영훈 대표에게 맨 앞 번호를 주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총재권한 대행까지 지냈고, 창당준비위원장을 거치면서 실질적으로 창당 산파역을 한 나를 뒷 번호에 배치한 것을 납득할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2000년 4월13일 새로운 천년의 첫 국회의원 총선거가 실시돼 227명의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46명 등 273명의 16대 국회의원이 탄생했다. 한나라당 133석, 새천년민주당 115석, 자민련 17석, 민국당 2석, 한국신당 1석, 무소속 5석이었다. 여권에 대한 국민의 비판 여론이 여전히 가라앉지 않았음을 보여 준 선거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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