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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니에 "내가 사랑했던 개…" / 문학은 한 마리의 애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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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니에 "내가 사랑했던 개…" / 문학은 한 마리의 애견?

입력
2002.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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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와 봐, 바보야. 1980년 9월 어느날 로맹 가리는 언제나처럼 율리시즈를 불렀다. 로제 그르니에는 친구에게 말했다. 율리시즈가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것 같네. 로맹 가리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면서 자기 집 처마 밑으로 가서 숨었다. 그르니에의 충견 율리시즈는 그해 9월23일에, 소설가 가리는 12월2일에 죽었다.올해 83세의 프랑스 작가 로제 그르니에는 국내 독자들에게는 다소 낯선 소설가다. 그는 그러나 페미나상, 카트르쥐리상, 알베르 카뮈상 등 프랑스의 문학상을 휩쓸었으며 85년에는 그의 전 작품에 대해 아카데미프랑세즈 문학대상이 수여될 만큼 중요한 작가로 꼽힌다. '내가 사랑했던 개, 율리시즈'(현대문학 발행)는 그르니에가 쓴 개에 관한 에세이다. 자신이 키웠던 개의 이름을 제목으로 삼았지만 개인적인 감상은 아니다. 율리시즈를 추억하면서 흘린 눈물이 점점 크게 번진다. 그는 폴 발레리, 장 폴 사르트르, 구스타브 플로베르, 알베르 카뮈 등 많은 작가들의 개를 바라보는 아름다운 시선과 따뜻한 목소리를 하나하나 되살린다.

로제 마르탱 뒤 가르는 "사람들은 개의 눈길 속에서 뭔가를 분간해낸다고 믿고 싶은 딱한 욕구를 버리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시 '개'에서 개가 처한 조건을 이렇게 적었다. "제외되지도 않고 포함되지도 않은."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 속의 개 플러시는 종교까지도 냄새로 받아들이는 피조물이다. "어떤 위대한 작가도 플러시가 맡는 수백만 가지 냄새를 묘사하지 못할 것이다." 책의 마지막, 그르니에의 짧은 성찰은 작가가 처음부터 얘기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개는 오로지 주인만을 바라보면서 한없이 사랑을 구한다. 오늘날 문학도 그렇다. "만약 문학이 친근하면서도 요구가 많아서 잠시도 우리를 편안하게 가만 놓아두지 않는, 사랑해주고 먹여주고 외출도 시켜주어야 하는 한 마리 개라고 한다면? 우리보다 먼저 죽어서 슬픔을 안겨주는. 오늘날엔 책의 수명이 얼마나 짧은가."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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