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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연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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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연탄

입력
2002.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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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는 읽는 이에게 정문일침(頂門一鍼)의 자각과 통찰력을 준다. 그런 의미에서 안도현의 짧지만 함축적인 시 '너에게 묻는다'는 내적 공명(共鳴)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시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전문(全文)이 단 삼 행인 이 시는 뜨거운 열정도 없이 타성에 젖어 살아가는 우리들의 속물성과 허위의식을 준열하게 질타한다. 골목에 굴러다니는 하찮은 연탄재에서도 지난 시절의 불 같은 열정을 읽어내는 시인의 시선이 따스하다.■ 가난한 이웃들의 삶을 진솔한 언어로 엮어 감동을 불러일으킨 베스트 셀러의 제목이 '연탄길'인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 책에는 세상의 상처와 기쁨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공동 화장실 앞에 줄을 서서 본능과 싸워야 하는 산동네 사람들의 희망 이야기,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자식을 끌어안고 함께 고통을 나누는 가족 이야기, 시련이 닥쳐도 변하지 않는 가난한 연인 이야기가 산동네를 배경으로 눈물겹게 펼쳐진다.

■ 연탄에는 서민들의 애환이 묻어 있다. 가난해서 더 추웠던 시절, 시간 맞춰 연탄을 갈아야 했던 아낙네들은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지금도 40∼50대의 장년들은 코를 찌르는 연탄가스에 숨을 멈추고 연탄을 갈던 젊은 시절을 잊지 못한다. 달동네의 연탄가스 중독 사망 기사가 연일 신문지상을 오르내리던 시절이었다. 산동네에 눈이라도 수북이 쌓이는 날이면 어김없이 '사랑의 연탄길'이 생기곤 했다. 가파르고 미끄러운 고갯길을 무사히 걸어 내려갈 수 있도록 연탄재를 깔아 놓는 것은 이웃의 미덕이었다.

■ 연탄이 사양길을 걸은 지는 이미 오래다. 연탄을 사용하는 집도 1만가구 정도로 줄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반세기 동안 연탄사업으로 회사를 일궈온 대성산업이 연탄 생산을 중단했을까. 대구 공장에 이어 마지막 남은 서울 영등포 공장도 최근 폐쇄됐다. 연탄의 수익성은 떨어지는데 부동산 가치는 올라가니, 공장을 헐어 아파트를 짓는 게 수지맞는 장사일 것이다. 대체 에너지가 무궁한데 굳이 연탄재가 남는 불편한 연탄을 고집할 이유도 없다. 시대는 발전하고 과거의 것은 없어지게 마련이니까. 그러나 눈부신 진보의 시기에 우리가 잃은 것이 과연 연탄 한 장뿐이었을까.

/이창민 논설위원 cm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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