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회계개혁법안이 윤곽을 드러냈다. 금융감독당국이 7일 발표한 '회계제도 개혁방안'은 미국이 엔론사, 월드컴 등의 대형 회계부정 사건에 따른 신뢰추락을 막기위해 최근 강력한 회계개혁법안을 만든 것에 대응, 국내기업들의 회계비리를 차단하기위한 강도높은 처벌과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관련법 규정을 대폭 개정하거나 보완하는 데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이번 방안이 실현될 경우 최고경영진과 대주주 등 기업의 책임이 선진국 수준으로 강화되는 대신, 투자자들은 보다 투명한 기업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됐다.
대주주는 회사 돈을 맘대로 쓰기 힘들어지고, 공시위반 등 불법을 지시했을 경우 더 이상 경영진에 책임을 전가할 수 없다. 투자자들은 자회사 등 종속회사의 실적까지 한눈에 볼 수 있고, 다음해 1월말이면 전년도 실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재계는 이번 개혁안에 대해 우리나라 실정과는 맞지 않다며 반발, 내년 임시국회에 상정될 경우 원안대로 통과될 지는 미지수다.
■최고경영진·대주주 책임강화
공개기업의 최고경영자(CEO)와 재무책임자(CFO)는 앞으로 사업보고서, 분·반기보고서, 유가증권신고서를 제출할 때 의무적으로 투명서약을 해야한다. 지금도 CEO가 날인을 해야 하지만 요식절차에 그쳐 문제가 됐을 때 임직원 전결이었다고 주장하면 처벌이 곤란하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허위공시 등이 있을 때는 CEO 등에 직접적인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되는 등 처벌수위가 대폭 강화됐다.
또 공시서류가 허위로 작성되는 등 증권거래법 위반사항이 적발될 경우 이를 실질적으로 지휘한 대주주(오너)에 대해서도 민사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된다. 지금은 상법상으로만 대주주의 손해배상책임이 있어, 공시위반 등 증권관련 위반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기가 쉽지 않았다.
이에 따라 법위반 사항이 적발됐을 때 대주주가 최고경영진에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는 일은 힘들게 됐다. 아울러 기업 부실화의 주된 요인중 하나였던 주요 주주와 임원, 이사 등에 대한 회사자금 대여도 어려워진다. 지금은 자산 2조원이상의 공개기업과 금융기관들에 대해서만 주요주주·특수관계인·임직원에 대한 자금대여시 이사회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으나 앞으로 모든 상장·등록기업에 대해 적용된다. 특히 대여나 담보제공시 만기, 이자율 등 지급조건을 상세히 공시해야 한다.
■공시제도 강화
기업의 재무제표 확정기관이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사회로 바뀐다. 이 경우 기업의 사업보고서 제출시한이 빨라져, 투자자들은 연간 사업보고서를 다음해 1월말이면 볼 수 있게 된다. 지금은 투자자들이 1분기 실적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3월에야 전년도 연간보고서가 나오기 때문에, 기업실적이 주가에 적절히 반영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또 기업이 제출해야 할 기본 재무제표가 개별기업 재무제표에서 연결재무제표로 바뀐다. 연결재무제표는 지배·종속관계(지분 30% 이상 소유 기업)에 있는 모든 기업을 하나의 회사로 보고 작성된 손익계산서와 대차대조표. 지금은 분·반기 보고서의 경우 연결재무제표 작성이 의무화돼 있지 않고, 연간 연결재무제표도 보충자료로만 공시되고 있어 투자자들이 종속회사의 재무상태를 적시에 파악하지 못하는 게 현실. 그러나 앞으로는 분·반기 보고서 제출 때 반드시 연결재무제표를 기본으로, 개별재무제표를 보조자료로 공시해야 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 같은 개선으로 기업이 개별기업 실적보다는 연결실적을 중시하게 될 것이고, 실적을 부풀리기 위한 관계회사간 내부거래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