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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그들만의" 할로윈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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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그들만의" 할로윈 파티

입력
2002.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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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동안 서울 시내 여러 호텔에서 열리는 할로윈 파티를 알리는 기사가 어지러웠다. 도대체 뭘까 하고 뒤적이다 보니 '2인에 30만원'이라는 요금이 눈에 들어온다. 하룻밤 즐기는 데 한 사람이 15만원을 들여야 한다면 요즘 유행하는 명품에 집어넣더라도 별 무리가 없을 터이다. 명품족이 뜬다는 말이 무성하더니 이제 놀이에도 명품이 등장한 것이다.명품 놀이라는 말이 의아하게 들릴 사람도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별로 새삼스러운 얘기도 아니다. 당장 땅덩이가 좁은 우리나라에서 골프는 대표적인 명품 놀이들 중 하나로 꼽힌다. 차가운 날씨와 함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 스키도 중저가품이 되기에는 아직 거리가 있고. 신혼여행의 인기 품목으로 자리잡았다고는 해도 해외여행 역시 여전히 선택받은 소수의 몫으로 남아 있다.

요즘 세상에만 명품 놀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명품으로 널리 대접을 못 받았을 뿐 과거 신분제 사회에서는 명품 놀이의 종류가 더 많고 다양했다. 산수 좋은 곳에 자리잡고 서로 시를 지으며 즐기던 시회(詩會)가 우리 사회의 명품 놀이였다면, 말 잔등에 높이 앉아 잘 훈련된 사냥개가 여우를 사냥하는 장면을 즐기던 여우사냥은 서구 귀족들의 명품 놀이였다. 어디에서나 평민들은 오늘날 골프장의 캐디처럼 귀족들의 시중을 들며 눈요기를 하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명품이 명품으로 널리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신분제가 붕괴하고 평등을 강조하는 민주주의 체제가 자리잡으면서부터 였다. 사라진 신분의 차이를 현실 속에서 다시 만들어내 다른 사람과 구별되고 싶다는 욕망이 명품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명품은 과거와 달리 누군가가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다 못해 신용카드의 도움을 받으면 웬만한 사람은 누구나 명품 한 두 개쯤 가지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되었으며, 그걸 규제할 수단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것이 등장할 만큼 명품이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오늘의 명품이 내일이면 금방 그저 그런 중저가품으로 바뀌고 마는 것이 흔한 일이 된 것이다.

할로윈 파티가 명품 놀이로 등장하는 것도 이런 배경과 연관이 있으리라. 한달 반 전의 추석이 다수 대중이 참여하는 중저가 명절이었다면 할로윈은 소수의 세련된 사람들이 즐기는 명품 명절이라는 것이다. 크리스마스와 더불어 미국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2대 명절로 일컬어지는 할로윈을 역사와 전통이 전혀 다른 우리나라에서도 즐기게 되었다니 세계화의 흐름이 얼마나 빠른 것인지.

쓸만한 축제의 장이 부족한 우리 사회에 외국 명절인 할로윈 축제라도 들여와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준다면 좋은 일 아니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중이 참여하여 거대한 야외행사로 치러지는 외국의 할로윈과 달리 밀실에서 소수가 참여하는 우리의 할로윈이 과연 얼마나 제대로 된 축제의 역할을 해 줄 수 있을까? 기껏해야 그건 소수의 사람들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과시하는 '티 내기' 행사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게다가 명품 놀이도 나름이지 하필이면 할로윈 파티라니. 우리 사회가 아직 개발도상국에 머물고 있다 보니 때로 외국의 중저가 제품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명품 행세를 한 적이 없지 않았다. 서구의 대표적 대중 축제인 할로윈이 우리나라에 와서 명품 놀이로 둔갑한 것에서 그런 아이러니를 보았다고 하면 너무 예민한 것일까?

남과 다르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은 티 내기도 좋지만 소수면 소수답게 장삿속에 휘둘리지 않는 자존심도 한 번 가져보자. 노블리스 오블리제 같은 사치스러운 어휘는 처음부터 아예 들먹이고 싶지도 않지만 말이다.

정 준 영 동덕여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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