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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88)국민신당 총재 시절 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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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88)국민신당 총재 시절 ⑤

입력
2002.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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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7,8월은 나의 정치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의 하나였다. 이인제(李仁濟) 후보를 도와 풍찬노숙(風餐露宿), 대선에서 지기까지는 나의 선택이었으니 어찌 할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대선 패배 후 힘없고 돈 없는 작은 정당의 총재로서 노심초사했던 심정을 그 누가 알 것인가.평생 남의 돈 한 푼 꿔본 적이 없던 내가 선거 빚을 갚으라고 찾아오는 빚쟁이들을 피해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으로 오르내려야 했고,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가 지금 왜 이러고 있나' 하고 한숨지은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당 존립이 위태위태한 가운데 7월21일에 치러진 서울 서초갑 보궐선거에 우리 당 후보로 출마한 박찬종(朴燦鍾) 고문이 8%대의 미미한 득표로 4위에 머물자 8명의 당 소속 의원들의 위기감은 더욱 심각해졌다. 당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해체의 길로 빠져들고 있었다.

당시 8명의 의원들은 거의 매일 밤 한 자리에 모여 자신들의 거취를 고민했다. 의원들은 각자 생각이 조금씩 달랐지만 부산 출신 의원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여당인 국민회의와의 합당을 원했다.

나는 끝까지 국민신당을 지키고 싶었지만 합당을 원하는 의원들을 붙잡아 둘 만한 힘이 없었다. 게다가 당 소속 의원들을 배려해야 하는 총재로서, 또 그에 앞서 정치 선배로서 나는 다음 국회의원 선거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의원들의 마음을 헤아려야 했다. 나중에는 대통령 후보였던 이인제(李仁濟) 고문마저 합당에 찬성해 줄 것을 내게 간청했다. 이인제 고문마저 그렇게 나오는 마당에 나 혼자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는 없었다. 결국 나는 국민회의와의 합당을 최종 결심했다.

당 대 당 통합의 구체적 절차를 위해 우리 당에서는 서석재(徐錫宰) 최고위원과 박범진(朴範珍) 사무총장, 그리고 국민회의에서는 김영배(金令培) 부총재와 정균환(鄭均桓) 사무총장 등 4명이 실무협상 대표로서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이 실무회의에서 모든 절차가 마무리된 8월28일 정균환 사무총장이 내게 "오늘 청와대에서 연락이 올 것"이라고 통보해 주었다.

그날 오후 4시30분 나는 청와대에 들어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을 만났다. 나는 그 자리에서 "오늘의 이 통합이 국민 대연합을 위한 큰 틀의 정계개편에서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통합의 의미를 강조했다. 김 대통령도 "앞으로 나라를 위해 큰 역할을 해 달라"는 덕담으로 화답했다.

나는 단 한 가지를 부탁했다. "국회의장까지 지낸 사람으로서 저는 개인적으로 아무 것도 바라는 게 없습니다. 다만 나라가 어려울 때 대통령께 직언을 해드리기 위해 면회 신청을 할 경우엔 꼭 만나 주시기 바랍니다. 부탁이라면 이것 뿐입니다." 김 대통령의 대답은 흔쾌했다. "그거야 이제 한 가족인데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내가 김 대통령을 만나고 청와대를 나선 후 청와대에서는 박지원(朴智元) 대변인 이름으로 "경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양당이 통합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튿날인 2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양당 의원과 당원들이 모여 통합선언대회를 열었다.

국민회의와의 통합에는 서석재 장을병(張乙炳) ·박범진 김운환 이용삼(李龍三) ·원유철(元裕哲) 의원 등 6명의 의원과 대부분의 당원이 참여했다. 지역구 사정으로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총재의 부여 지구당을 이어 받기로 한 김학원(金學元) 의원은 내게 미리 양해를 구하고 자민련으로 자리를 옮겼다. 부산 출신의 한이헌(韓利憲) 의원은 경제청문회가 끝날 때까지 무소속으로 남기로 했다.

9월17일 국민회의와의 통합을 위해 국민신당을 해체하는 마지막 전당대회가 열렸다. 나는 당원들에게 국민신당 총재로서 고별사를 했다. 만감이 교차하면서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솟았다. 마치 10년 같았던 10개월간의 국민신당 총재 시절을 떠올리고 보니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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