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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640)스티브 매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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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640)스티브 매퀸

입력
2002.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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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11월7일 미국 영화배우 스티브 매퀸이 멕시코에서 작고했다. 50세였다. 아마추어 카레이서로서 즐겨 입었던 옷의 석면이 그의 폐에 암을 유발했다. 어쩌면 젊은 시절 조선 노동자와 탱크 수리병으로 일할 때 몸에 쌓인 석면이 암의 원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직접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매퀸은 종양 제거 수술을 받은 직후 성경을 가슴에 안고 죽었다. 그의 곁에는 죽기 열 달 전에 결혼한 모델 바바라 민티가 있었다. 매퀸은 그보다 두 해 전 두 번째 아내인 여배우 알리 맥그로와 이혼했다. 화장된 매퀸의 유해는 태평양에 뿌려졌다.스티브 매퀸의 얼굴과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말부터 60년대 초까지 방영된 텔레비전 서부극 시리즈 '원티드'(지명수배)를 통해서다. 그는 이후 '황야의 7인' '대탈주' '신시내티 키드' '블리트' '게터웨이' '빠삐용' '타워링' 등의 영화를 통해 끝없이 자유를 갈구하는 반항아 이미지와 이웃에 헌신하는 책임감있는 시민의 이미지를 동시에 구현했다. '러브 스토리'의 여주인공역을 맡았던 알리 맥그로와 사랑에 빠진 것은 '게터웨이'에서 공연하면서다. 스티브 매퀸은 1960년대의 남성 패션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을 만큼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많은 영화에서 그가 구현한 '쿨'한 반항아 이미지는 실제로 소년원에서 불우하게 자랐던 매퀸의 과거와 끈이 닿아 있었다.

더스틴 호프만과 공연한 '빠삐용'에서 매퀸은 살인 누명을 쓰고 남아메리카 기아나의 교도소에 갇혔다가 거듭 탈출을 꾀하는 어느 프랑스인 역을 맡았다. 앙리 샤리엘이라는 실제 인물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의 주제가 '바람처럼 자유롭게'는 매퀸이 스크린 속에서 창조한 수많은 인물의 공통된 지향이기도 했다.

고 종 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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